[김과장 & 이대리] 퇴근후 창업 '야자'…고3 시절 저리 가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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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전선 뛰어든 직장인들
대기업 나와 거래 트려니 '완벽한 을(乙)' 전락
대기업 나와 거래 트려니 '완벽한 을(乙)' 전락
록밴드 ‘장미여관’의 신곡 ‘퇴근하겠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나이 먹을 동안/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았네/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텨왔는데… 나 이제 행복 찾아 떠나렵니다/인생 한번 걸어볼랍니다/퇴근하겠습니다.’
생계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직장인에 대한 얘기다. 이 노래에서 ‘퇴근’은 ‘퇴사’를 뜻한다. 이 노래처럼 새 꿈을 찾아가는 직장인을 요즘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 부진 등의 요인으로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는 등 직업 안정성이 극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장인 사이에선 창업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들은 창업에 앞서 회사에 다니며 동료들의 눈을 피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하던 것보다 더 열정을 쏟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창업에 나선 김 사장, 이 사장이 되고 나면 변하는 것도 많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달 동안 가장 기다리는 날이었던 월급날이 창업 후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로 바뀐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제2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고3 때보다 열심히 ‘창업 공부’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 대리(35)는 내년 초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릴 계획이다. 최 대리는 매일 퇴근한 뒤 ‘킥스타터(kickstarter)’ ‘인디고고(indiegogo)’ 등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살핀다. 해외 스타트업의 제품을 볼 수 있어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데에 훌륭한 교과서가 되기 때문이다.
한 주에 1~2일은 서울에 있는 ‘패스트캠퍼스’로 부리나케 향한다. 여기서는 iOS·안드로이드 앱(응용프로그램) 개발 과정을 수강한다. 프로그래밍, 통계 분석 등 실무 역량을 쌓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 대리는 “대학생 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사업에 도전했다가 쫄딱 망한 경험이 있다”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고3 때보다 열심히 창업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대기업을 나와 인터넷 쇼핑몰을 차린 김모씨(29)도 이 쇼핑몰을 창업하기 전 수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공간 대여 사업으로 스타트업을 차렸지만 예상과 달리 수익이 나지 않았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가 많은 데다 무리하게 임대료가 비싼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이후 미술 전시사업에 손을 댔다가 경쟁업체에 밀려 또 실패했다. 쇼핑몰 창업에 앞서 수업료를 비싸게 치른 셈이다.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은 큰 투자를 피하는 식으로 위험을 줄이고 경쟁 업체 분석도 꼼꼼히 하고 있다”고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스스로 성장해요”
대기업 신입사원이던 김모씨(29)는 2년 전 회사를 뛰쳐나와 대학 시절 지인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부품같이 사는 삶이 지겨웠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더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씨가 합류한 회사는 화장품 성분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앱을 만드는 곳이다. 직원 30여명이 근무하고 구성원은 모두 20~30대다. 엄격한 서열 문화에 찌들어 부장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이전 회사와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자율휴가제, 하루 30분 낮잠타임, 도서 구입비 등을 원하는 대로 지원해주는 학습지원제까지 직원 스스로 성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좋았다. 스타트업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하루하루 성장하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보람을 느낄 만한 일도 생겼다. 최근 벌어진 ‘옥시 사태’로 앱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 김씨는 “내 회사라는 생각에 욕심을 내다 보니 업무에 끝이 없다”며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바쁘고 몸도 고되지만 고객의 반응을 접하다 보면 일반 회사에서 얻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IT 보안업체를 차린 박모씨(27)도 창업한 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박씨가 창업 이후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은 오전 11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문화다. 그는 “내가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회사 전체 출근 시각을 늦춰버렸다”며 “회사 규모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출근 시각을 조정해야겠지만 지금은 근무 시간이 짧은 만큼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운영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을 나오면 달라지는 것들
전시회사를 그만두고 IT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노모씨(35)는 작년 말 직원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크리스마스이브도 쉬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요구에 “빨간 날도 아닌데 왜 쉬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지난달 6일에도 직원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한 끝에 쉬기로 합의했다. 노씨는 “직장에 다닐 때는 쉬는 날이 많을수록 좋았지만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창업하고 달라진 모습이 나 스스로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고 했다.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에 다니다가 2014년 음식배달 스타트업을 차린 박모씨(32)는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날이 돌아오고 있는데 물품대금을 입금하기로 한 거래처 사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박씨는 “분명히 얼마 전 월급을 지급한 것 같은데 금세 또 월급날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따박따박’ 월급을 받던 대기업 사원 시절이 그립다”고 털어놨다.
국내 대규모 유통기업에서 상품기획자(MD)로 일하다가 지난해 회사를 나와 인터넷 쇼핑몰을 차린 김모씨(31)는 “창업 이후 갑(甲)에서 을(乙)이 됐다”고 한탄했다. 김씨는 “대기업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납품업체 직원에게 사업을 자문하려 했더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뚝 끊더라”며 “대기업에 다니면서 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금 내가 을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됐다”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생계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직장인에 대한 얘기다. 이 노래에서 ‘퇴근’은 ‘퇴사’를 뜻한다. 이 노래처럼 새 꿈을 찾아가는 직장인을 요즘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 부진 등의 요인으로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는 등 직업 안정성이 극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장인 사이에선 창업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들은 창업에 앞서 회사에 다니며 동료들의 눈을 피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하던 것보다 더 열정을 쏟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창업에 나선 김 사장, 이 사장이 되고 나면 변하는 것도 많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달 동안 가장 기다리는 날이었던 월급날이 창업 후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로 바뀐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제2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고3 때보다 열심히 ‘창업 공부’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 대리(35)는 내년 초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릴 계획이다. 최 대리는 매일 퇴근한 뒤 ‘킥스타터(kickstarter)’ ‘인디고고(indiegogo)’ 등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살핀다. 해외 스타트업의 제품을 볼 수 있어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데에 훌륭한 교과서가 되기 때문이다.
한 주에 1~2일은 서울에 있는 ‘패스트캠퍼스’로 부리나케 향한다. 여기서는 iOS·안드로이드 앱(응용프로그램) 개발 과정을 수강한다. 프로그래밍, 통계 분석 등 실무 역량을 쌓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 대리는 “대학생 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사업에 도전했다가 쫄딱 망한 경험이 있다”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고3 때보다 열심히 창업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대기업을 나와 인터넷 쇼핑몰을 차린 김모씨(29)도 이 쇼핑몰을 창업하기 전 수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공간 대여 사업으로 스타트업을 차렸지만 예상과 달리 수익이 나지 않았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가 많은 데다 무리하게 임대료가 비싼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이후 미술 전시사업에 손을 댔다가 경쟁업체에 밀려 또 실패했다. 쇼핑몰 창업에 앞서 수업료를 비싸게 치른 셈이다.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은 큰 투자를 피하는 식으로 위험을 줄이고 경쟁 업체 분석도 꼼꼼히 하고 있다”고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스스로 성장해요”
대기업 신입사원이던 김모씨(29)는 2년 전 회사를 뛰쳐나와 대학 시절 지인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부품같이 사는 삶이 지겨웠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더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씨가 합류한 회사는 화장품 성분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앱을 만드는 곳이다. 직원 30여명이 근무하고 구성원은 모두 20~30대다. 엄격한 서열 문화에 찌들어 부장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이전 회사와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자율휴가제, 하루 30분 낮잠타임, 도서 구입비 등을 원하는 대로 지원해주는 학습지원제까지 직원 스스로 성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좋았다. 스타트업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하루하루 성장하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보람을 느낄 만한 일도 생겼다. 최근 벌어진 ‘옥시 사태’로 앱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 김씨는 “내 회사라는 생각에 욕심을 내다 보니 업무에 끝이 없다”며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바쁘고 몸도 고되지만 고객의 반응을 접하다 보면 일반 회사에서 얻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IT 보안업체를 차린 박모씨(27)도 창업한 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박씨가 창업 이후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은 오전 11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문화다. 그는 “내가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회사 전체 출근 시각을 늦춰버렸다”며 “회사 규모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출근 시각을 조정해야겠지만 지금은 근무 시간이 짧은 만큼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운영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을 나오면 달라지는 것들
전시회사를 그만두고 IT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노모씨(35)는 작년 말 직원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크리스마스이브도 쉬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요구에 “빨간 날도 아닌데 왜 쉬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지난달 6일에도 직원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한 끝에 쉬기로 합의했다. 노씨는 “직장에 다닐 때는 쉬는 날이 많을수록 좋았지만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창업하고 달라진 모습이 나 스스로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고 했다.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에 다니다가 2014년 음식배달 스타트업을 차린 박모씨(32)는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날이 돌아오고 있는데 물품대금을 입금하기로 한 거래처 사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박씨는 “분명히 얼마 전 월급을 지급한 것 같은데 금세 또 월급날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따박따박’ 월급을 받던 대기업 사원 시절이 그립다”고 털어놨다.
국내 대규모 유통기업에서 상품기획자(MD)로 일하다가 지난해 회사를 나와 인터넷 쇼핑몰을 차린 김모씨(31)는 “창업 이후 갑(甲)에서 을(乙)이 됐다”고 한탄했다. 김씨는 “대기업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납품업체 직원에게 사업을 자문하려 했더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뚝 끊더라”며 “대기업에 다니면서 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금 내가 을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됐다”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