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장관에 룰라 임명…호세프 승부수 통할까
‘남미 중도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71·사진 오른쪽)이 2010년 대통령 퇴임 뒤 5년여 만에 정치무대에 복귀하며 브라질 권력의 중심에 섰다.

17일 외신들에 따르면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왼쪽)의 제의를 받아들여 수석장관을 맡기로 했다. 브라질 정부조직법상 수석장관은 행정부처를 총괄하는 자리다. 정무장관과 함께 정부 부처의 정책 조율, 정부와 의회 관계 중재,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간 통로 역할 등을 수행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을 수석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최근 부패혐의로 기소된 룰라 전 대통령을 감옥행으로부터 구해내는 동시에 사실상 브라질의 리더로 세우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브라질에서 연방정부 각료는 주(州)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되고 연방검찰의 수사와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주관하는 재판만 받는 특권을 갖는다.

지난주 상파울루주 검찰은 룰라 전 대통령이 3층짜리 호화 저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고 돈세탁 혐의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호세프 대통령도 최근 경제 실정과 부패혐의로 수백만명에 이르는 시위대로부터 탄핵 위기에 몰려 있다.

FT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설득력이 뛰어난 룰라 전 대통령이 수석장관 취임 이후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혁에 착수하면서 정부의 주요 정책을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브라질에서 존경받는 전직 중앙은행장 엔히크 메이렐리스를 다시 기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브라질 최대 일간지인 폴랴지상파울루의 에두아르두 솔레스 칼럼니스트는 “사실상 룰라의 세 번째 대통령 임기가 시작됐다”며 “언론인이나 기업인, 동료 정치인들이 이제 호세프보다는 룰라와 대화하기를 원할 것이고 호세프도 여기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 전 대통령의 기용에 제1야당인 브라질 사회당(PSDB) 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독려하고 나섰다.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 수사를 지휘하는 남부 파라나주(州) 연방법원의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룰라와 호세프 대통령 사이의 전화통화 감청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국민 사이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감청자료에서는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에게 장관 임명장을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주말에도 반정부 시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00만명이 모여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브라질 북동부 빈민가에서 태어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룰라 전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