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니엘 "유리구슬로 만든 검은 연꽃에 소외된 사람들 희망 피워냈죠"
프랑스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궁전 야외 정원에 색색의 유리구슬로 만든 분수대가 눈에 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설치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52·사진)이 지난해 6월 정원 리노베이션 작업의 일환으로 설치한 작품 ‘아폴로의 입구-아름다운 춤’이다. 증식하는 생명체 같은 수천개의 유리구슬이 진주목걸이처럼 꿰어져 있는 이 작품은 세찬 물줄기와 어우러져 마치 드로잉처럼 조형미학을 뿜어낸다.

프랑스 남동부 생에티엔에서 태어난 오토니엘은 1991년 독일의 권위 있는 현대미술축제인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해 퐁피두센터, 구겐하임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한 것은 물론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초대받았다. 예술성과 장식성이 뛰어난 작품의 독특함 때문에 샤넬, 까르띠에 등 명품업체들의 작품 주문도 이어지며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오토니엘이 서울에 왔다. 다음달 2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때문이다. 2011년 플라토에서 연 회고전 이후 5면 만에 마련한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검은 연꽃(black lotus)’. 진흙에서 피지만 항상 고아한 자태를 뽐내는 연꽃의 중의적 의미를 유리구슬로 형상화한 설치작품과 석판화 등 10점을 내놓았다.

오토니엘은 “연꽃은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탈출구 같은 것”이라며 “그 형태를 추상미학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동성애자, 에이즈환자, 난민 등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업에서 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의 숨은 의미나 상징은 매력적인 것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며 “특히 순수함과 상충하는 검은 색을 사용한 작품은 흑백 또는 선악이 함께 있는 중의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유리구슬 작업은 대개 율동적이고 화려하지만 고품격 에로티시즘 미학이 짙게 배어 있다. 젊은 시절 사제의 길을 꿈꾸던 그는 20대에 한 신부를 짝사랑했다. 동성에 대한 아련한 첫사랑의 향수부터 사랑과 이별에 대한 그의 감성은 1992년 유리 목걸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도이자 치유의 수단으로 유리구슬을 활용했다. 구슬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동시에 그 안에 다른 유리구슬들을 받아들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유리구슬은 쉽게 깨지는 특성 때문에 고통의 눈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사랑의 결정체, 고귀한 인격을 의미한다.

유리구슬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연꽃으로 승화한 그는 “기존 작품보다는 신작이 좀 더 순수하고 과격한 측면이 있다”며 “디지털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한 미학을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