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저유가 시대 해외건설, 투자개발형 늘려라
두바이유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지는 등 유가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국내의 해외 건설 및 엔지니어링 업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저(低)유가는 한국 건설업체의 최대 해외시장인 중동 국가들의 재정 악화로 이어져 예정된 석유·가스플랜트 사업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한국 업체의 중동 건설 수주액은 2014년 313억5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65억3000만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국내 공공 공사 물량이 줄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려던 엔지니어링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사정도 녹록지 않다. 지난달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 시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란의 원유 관련 플랜트사업 발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란이 본격 원유 증산에 나설 경우 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중동 전체의 공사 발주량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해외 건설시장의 불확실성은 한국 건설 및 엔지니어링업체의 체질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업체들은 산유국 정부나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발주하는 공사를 도급사업 위주로 수주했다. 그러다 보니 국제경제 상황에 따라 수주액이 들쭉날쭉해 장기 경영계획 수립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제 국내 업체들도 기획제안형이나 투자개발형 해외사업에 적극 진출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최근 몇 년간 중앙아시아에서 보여준 일부 업체들의 성과를 눈여겨볼 만하다. 2009년 투르크메니스탄에 처음 진출한 현대엔지니어링은 LG상사와 손잡고 가스전 개발사업을 비롯해 정유공장 현대화공사, 석유화학 생산시설 공사 등의 사업을 현지 정부와 발주기업에 제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원개발부터 판로확보까지 일관하는 컨설팅으로 현지 정부의 신뢰를 얻고 추가 수주에 성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춘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롯데케미칼, 한국가스공사 등이 투자한 수르길석유화학단지가 지난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가스 채굴부터 합성수지제품 생산까지 수직계열화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 에너지·화학 기업들이 투자하고 현대엔지니어링·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시공한 투자개발사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런 성공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중동에 치중된 도급형 사업수주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자원이 풍부하고 개발 여력이 큰 신흥 국가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설계 등 초기 자원개발에 필요한 설계 능력, 개발자금 조달 능력 등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둘째, 기획제안형 및 투자개발형 사업 추진을 위해 관련 기업 간 협업도 뒤따라야 한다. 셋째,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외교 지원도 필요하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추진 중이던 칸딤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한 조속한 승인을 요청해 6개월여 만에 본계약까지 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해외 건설은 1970년대 ‘중동 신화’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주력 분야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건설회사들의 일부 해외 손실이 부각되면서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분야로 치부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저유가로 해외 공사 발주가 줄면서 미래 전망도 어둡다.

위기 상황을 냉철히 분석해 정부는 외교적 뒷받침을 강화하고 업계는 엔지니어링 역량을 키워 고부가가치 디벨로퍼(개발자)로 성장함과 동시에 저개발 신흥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다변화한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런 변화에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재완 <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국제엔지니어링컨설팅연맹(FIDI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