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공자위원장 "중동 협상 소강상태, 새로운 전략 세워야"
이광구 행장 내달 유럽 출국…"정치권서 매듭 풀어야" 지적도


저유가로 중동 산유국이 재정난에 봉착하면서 중동 국부펀드에 희망을 걸던 정부의 우리은행 매각 방안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우리은행은 유럽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인수 희망자를 찾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시가보다 높은 매각 가격을 고수하는 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민간 측 위원장인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동 국부펀드와의 우리은행 지분 매각 협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며 "이제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이 악화한 중동 산유국의 해외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있어 매각 협상이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작년부터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등 중동 지역 국부펀드를 상대로 우리은행 지분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이 작년 8월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해 정부 및 국부펀드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며 매각 진행에 힘을 실었고, 실제 UAE 측과의 협상에선 상당한 진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각 조건에 대한 쌍방 간의 간극을 좁히기도 전에 국제유가 하락폭이 커지면서 중동 국부펀드들이 인수에 소극적으로 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중동 산유국들은 저유가로 정부 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부펀드를 통해 전 세계에 투자했던 자금의 회수에 나서고 있다.

전문 분석기관 이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중동 국부펀드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로부터 회수한 자금은 작년 3분기에만 최소 190억 달러(약 22조8천억원)에 이를 정도고, 집계되지 않은 회수 자산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 쪽 매각 성사가 사실상 난관에 봉착하면서 다른 지역 투자자들의 인수 의사를 타진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단 정부가 먼저 전면에 나서는 대신 피인수자인 우리은행이 투자수요 물색에 나섰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내달 중순 유럽의 금융허브인 영국 런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지를 방문해 투자설명회(IR)를 열 예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김승규 부사장이 유럽 IR에 나선 바 있지만 올해는 이 행장이 직접 투자자 설명회에 나설 예정"라며 "행장이 의지를 갖고 IR에 나서는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을 더 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개선된 경영지표와 자산건전성 지표를 토대로 은행의 잠재적 투자가치가 높다는 점을 유럽 투자자들에게 강조할 예정이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의 원화대출금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2013년 24.1%에서 2014년 24.4%, 2015년 6월 24.8%로 확대되고 있다.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2013년 2.99%, 2014년 2.10%에서 2015년 6월에는 1.65%로 줄어 개선세를 보였다.

공자위도 우리은행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윤 공자위원장은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유로존 지역의 경기가 최근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라며 "한국이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된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유럽이 신흥국에서 회수한 자금을 한국에 투자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네 차례에 걸친 우리은행 지분 매각이 실패로 끝난 근본 요인이 바뀌지 않고서는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과거 실패를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우리은행 매각이 매번 실패로 끝났던 것은 당시 시점에서 최선의 가격으로 파는 전략이 아니라 투입된 공적자금의 액면금액 이상을 회수한다는 비합리적인 원칙을 고수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시장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경직된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고 비판했다.

투입된 공적자금의 액면가액을 회수하려면 주당 1만3천500원 수준으로 매각이 이뤄져야 하지만 우리은행의 현재 주가는 주당 8천540원(8일 종가 기준)에 불과하다.

결국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에서 비롯된 '변양호 신드롬'을 해소해 관가의 보신주의 유인을 없애지 않고서는 우리은행 민영화가 요원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우리은행 매각 지연의 근본 배경은 결국 정치에 있다"며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액면가를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야당이 이를 문책하지 않겠다고 먼저 공언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은 시간만 죽이고 책임질 일은 안 하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고동욱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