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자동차 산업의 '박유기 리스크'
현대자동차는 최근 몇 가지 굵직한 경영 성과를 발표했다. ‘미국·중국 시장 판매 호조’ ‘1996년 이후 19년 만에 내수 판매 120만대 돌파 전망’ ‘친환경 전용차 아이오닉 내년 출시’ 등이다. 주가를 밀어올릴 만한 호재인데 증시 반응은 덤덤하다. 증권사 고위직 지인에게 물었더니 ‘알면서 뭘’ 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박유기 리스크 아니겠어?”

녹록지 않은 글로벌 차시장

현대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맏형이다. 국내 및 해외 현지에서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를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켜왔다. 지금 안팎의 여건은 녹록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나서 전열을 재정비한 글로벌 차 메이커들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찻잔 속’에 머물던 중국 변수도 발등의 불이 될 공산이 크다. 중국 지리(吉利)자동차는 스웨덴 볼보 기술력으로 만든 S60을 앞세워 추격전을 벌일 태세다. 값싼 스마트폰으로 업계를 놀라게 한 ‘샤오미 쇼크’가 자동차시장에서도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나라 안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 대신 삶의 질을 택하면서 수입차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의 젊은 층은 국산차 수요 위축 요인이다.

시급하고 중대한 변수는 새로운 노조 집행부다. 박유기 당선자는 오는 10일 취임식을 하고, 집행부가 출범한다. 그는 2006년 노조위원장 시절 현대차 노조를 금속노조에 가입시킨 ‘강성 인물’이다. 사측과 이경훈 직전 집행부가 9부 능선까지 협상을 진행한 임금체계 개선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노사가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온 그 현안이다. 일정 근무연수를 넘은 직원들의 급여를 일부 깎아 청년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자는 임금피크제 도입도 단호히 거부했다. 증시와 산업계가 박 당선자의 강성 행보를 우려하는 까닭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노조위원장 당시 44일간 파업을 주도한 전력이 새 집행부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재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생산 현장은 물론 본사로까지 시위 전선을 확대할 경우 글로벌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울산지역 산업계에서는 박 당선자에게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발휘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2006년과 자동차업황이 크게 달라졌고, 지역경제와 2·3차 협력업체 등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 당선자가 자동차산업의 위기 상황에 인식을 같이하고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강경파 저항’도 줄고, 자동차 업황도 불확실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기대다.

10일 임시 대의원 대회 '주목'

박 당선자는 집행부 출범 직후에는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어 향후 행보를 결정한다. 현대차는 자동차산업의 맏형이고, 자동차는 ‘수출 한국호(號)’에 얼마 남지 않은 주력 품목이다. 중국산의 거센 추격에 덜미를 잡혀 조선 철강 반도체 등은 이미 수출 한국호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자동차 업종마저 휘둘린다면 가뜩이나 취약해진 국가 경쟁력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게 불보듯 뻔하다. ‘박유기 리스크’는 호사가들의 말 지어내기에 그쳐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산업은 물론 수출 한국호도 산다.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