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칠성파 행동대장 결혼식에 서울·호남 조폭들 참여

조직폭력배가 지역 중심으로 뭉쳐 영역싸움을 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이제는 돈을 좇아 전국구 단위로 이합집산해서 움직인다.

이런 변화는 2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 경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부산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 행동대장 권모(56)씨의 결혼식 하객 250여명 가운데 폭력 조직원 30여명이 눈에 띄었다.

칠성파 조직원 15명을 비롯한 부산의 다른 조직원 5명,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폭 10명 등이 경찰이 파악한 당사자들이다.

이들의 지역 기반은 영남과 호남이었으나 지금은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돈이 된다면 근거지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력배가 가장 많은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조폭의 근거지는 지방이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올해 7월 말 현재 전국 경찰 관리대상 조폭은 213개파 5천342명이다.

이 가운데 경기와 서울이 각각 846명, 516명으로 전체의 25%를 넘는다.

권씨도 한때 칠성파 두목 이강환(72)의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아예 주소를 서울로 옮겼다.

동료 조직원을 모델로 삼은 영화 '친구'가 흥행하자 2001년 곽경택 감독을 협박, 3억원을 뜯었다가 2005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장본인이다.

지방 조폭이 상경하면 출신 지역에 집착하지 않고 합종연횡 방식으로 세력을 키우는 게 특징이다.

조직원 규모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려는 욕심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권씨의 결혼식에 여러 지역 출신의 조폭이 직접 참석하거나 축의금을 전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날 결혼식 사회와 축가는 탤런트 손지창과 김민종이 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3일 "권씨가 다양한 조폭을 초청해 전국구임을 알리고 유명 탤런트에게 사회와 축가를 맡겨 연예계 인맥도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과거처럼 수백 명의 건장한 조폭이 위세를 과시하지는 않는다.

조폭 영화에서처럼 깍두기 머리를 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조직원들이 행사장 입구에 길게 늘어서서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시민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경찰이 수년 전부터 그런 행동을 못하도록 개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일 결혼식 전에도 경찰이 도열 인사 등을 하지 말도록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젊은 조직원들도 참석하지 말도록 했다.

이날 하객 대부분은 권씨 또래인 40∼50대였다.

칠성파의 참석 인원도 적었다.

두목은 몸이 불편해 나타나지 않았고 검찰 수사로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된 영향도 있어 보인다.

칠성파는 1970∼1990년대에 신20세기파와 함께 부산 조폭의 '양대산맥'이었다.

다른 조폭 단체의 구성원 역시 두목이나 부두목 등 거물급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1960∼1970년대 명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옛 '신상사파'의 두목 출신의 신상현(83)씨가 노구를 이끌고 왔을 뿐이었다.

신상사파는 정치깡패가 소탕된 1970년대 서울의 조직폭력배 세계를 장악한 토착세력이다.

그러나 '범호남파'가 신상사파의 신년회가 열리던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을 1975년 1월 습격한 것을 계기로 주도권을 빼앗겼다.

범호남파는 1980년대 중반까지 전국 3대 폭력조직이었던 '양은이파', '범서방파', 'OB파' 등으로 분화했다.

하지만, 이들 조직도 지금은 거의 괴멸된 상태다.

요즘 조폭들이 패싸움이나 칼부림 등 전통적 세력 다툼 대신에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고 공존하려는 이유다.

자금 조달 방식도 '갈취형'에서 '합법위장 기업형'으로 바뀌었다.

계파를 초월해 동갑내기끼리 어울리기도 한다.

소규모 단위로 활동하다가 필요할 때 조직 전체가 움직이는 '프랜차이즈 방식'도 있다.

'온천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나뉜 부산 칠성파가 그런 사례다.

경조사비 주고받기도 조폭의 신풍속도이다.

칠성파 행동대장 권씨의 결혼식은 1시간 반가량 진행됐지만, 조폭 구성원들은 대부분 자파 조직에서 받은 축의금을 모아 전달만 하고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식장을 뜬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폭의 이러한 변화상을 간파하고서 이날 결혼식장과 인근에 200여 명을 투입해 돌발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s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