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압승 속 정치 개혁·언론자유 확대 요구 커질 전망
외국인 증가 불만, 빈부격차, 고물가 해소 과제


싱가포르 조기 총선에서 집권 인민행동당(PAP)이 압승을 거둔 것은 국민이 정치 개혁과 변화보다는 안정 속의 성장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몇년 동안 표출됐던 정치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열망보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가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PAP의 승리는 선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다.

싱가포르는 당초 오는 2017년 1월까지 총선을 실시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아 애국주의 물결이 형성되고, 지난 3월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타계해 그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자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와 PAP는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싱가포르의 번영에 큰 기여를 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해 국민이 표하고 있는 감사와 독립 후 이룩한 경제적 성공에 대한 국민 자축이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리콴유 전 총리는 PAP 창설자이며, 리셴룽 현 총리의 선친이다.

싱가포르 국민은 자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데 리콴유 전 총리와 PAP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

영국 식민지 치하 자치정부 시절에 창설된 PAP는 지금까지 정권을 놓친 적이 한번도 없다.

지난 2011년 총선 때 전체 87석 중 81석을 획득하고, 야당에 6석을 내줘 최대의 패배로 기록됐다.

PAP는 이번에 압승을 거둠으로써 지지율 하락세를 멈추고 장기 집권 기반을 다지게 됐다.

대부분의 정치 관측통들은 PAP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독주를 계속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만큼 PAP가 정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야당이 성장할 정치적 토양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PAP 지도력 아래 싱가포르가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해 야당들은 정부를 구성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개방도 확대, 언론 자유 신장 등 유권자들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열망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빈부격차 축소, 높은 주택 가격 등 고물가 해소, 외국인 노동자 제한 등에 대한 국민 요구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 같은 여론은 이미 지난 2011년 총선에서 거세게 표출된 바 있다.

당시 노동당은 사상 최대인 6석을 얻었고, 이후 실시된 보궐 선거에서도 1석을 추가해 이번 총선 직전까지 7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1년까지 선거에서 한 석도 얻지 못했던 야당이 크게 약진한 것이다.

이는 PAP의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이 강해지고, 빈부격차 확대, 높은 물가, 외국인 증가 등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싱가포르는 경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에 걸맞은 정치 발전을 이루지 못해 권위주의 국가, '소프트한 독재 국가'로 비판받는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80개 국가 중 153위를 기록했다.

저출산, 작은 인구 규모 등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하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여 전체 인구 540여만 명 중 40% 가량이 외국인들이다.

외국인이 증가하자 가뜩이나 비싼 주택가격이 더 오르고 취업, 교육 등의 분야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경쟁이 치열해졌으며 지하철 등 교통시설의 혼잡이 심해지고 생활 환경이 악화됐다.

싱가포르의 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세계물가조사 보고서에서 싱가포르는 지난해와 올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로 꼽혔다.

이런 국민 불만은 이번 선거에서도 표출돼 야당 지지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었다.

싱가포르 유권자들은 그러나 이런 전망을 뒤엎고 최근에 조성된 애국주의 물결 속에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PAP를 선택했다.

싱가포르에서 정치적 다원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과거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세대를 대표했던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로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독립 50주년을 맞아 또다른 미래 50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리 전 총리가 주창했던 개발독재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리콴유 전 총리의 부재는 PAP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가 앞으로 경제 발전을 지속하고 선진 국가로 남기 위해서는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독재적 정부 운영과 효율적 통치 체제에서 벗어난 정치적 다원주의와 시민 자유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이들은 강조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현경숙 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