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창업 초심으로 숱한 위기 넘겼다…70년 생존기업의 '6대 DNA'
기업이 70년을 생존하기는 무척 어렵다. 자유경제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신생기업이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은 30%에 불과하다. 2007년 세워진 신생기업 10곳 중 7곳이 5년 안에 문을 닫았다. 미국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50년이고, 1900년에 상장한 회사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뿐이다. 1945년 설립된 한국의 해방둥이 기업들은 △품질 우선주의(SPC) △해외 개척(아모레퍼시픽) △국익 우선 정신(한진) △오뚝이 같은 재기(해태제과) △수액 한 우물(JW중외제약) △내실 경영(노루페인트·건설화학공업)으로 7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1) 품질 우선주의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파리바게뜨 매장을 매일 두 차례 방문했다. 바게트를 직접 시식하면서 품질을 점검했다.

허 회장은 주머니 속에 온도계를 넣고 다니면서 밀가루 반죽과 제빵실의 온도를 재는 것으로 유명하다. 외환위기로 삼립식품이 부도났을 때도 허 회장의 샤니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2002년 삼립식품을 인수해 SPC그룹을 출범했다.

(2) 해외 개척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창업자인 고 서성환 명예회장의 모친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창성상점’을 열고 동백기름을 팔면서부터다. 아모레퍼시픽이 해외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바탕에는 개성상인의 DNA가 있다. 회사명은 1987년 태평양화학, 1993년 태평양에서 2002년 아모레퍼시픽으로 바뀌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보습 크림으로 유명한 라네즈는 기후 영향으로 피부가 건조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은 최고가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과 한방화장품 설화수로 공략하고 있다.

(3) 국익 우선 정신

한진그룹은 운수업으로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경영철학으로 시작됐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1945년 11월 만든 한진상사가 베트남전 미군 물자를 수송하면서 성장했다. 1971년부터 5년간 총 1억500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5~200달러인 시절이었다. 1969년 당시 적자투성이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것도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조 회장은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이라고 말했다.

(4) 재기로 옛 명성 회복

해태제과는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의 공격적인 행보로 어려움을 겪었다.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인 박병규 해태제과 회장이 작고한 뒤 장남인 박건배 회장은 제과업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1994년 당시 국내 최대 오디오 업체인 인켈을 인수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해태제과는 부도를 맞았다. 2005년 크라운제과에 인수된 뒤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5) 수액 한 우물

JW중외제약은 링거액 등 수액 한 우물로 7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마진이 거의 없지만 ‘필수 의약품 생산’이라는 사명감으로 수액 한 우물을 팠다. 1950년대는 맹장수술을 받고도 수액이 없어 탈수 현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았다. 고 이기석 창업주가 수액 개발을 결심한 까닭이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10월 국내 최초로 수액을 개발했지만 대량 생산 시설이 없었다. 이 창업주는 “공들여 수액을 개발했는데 여기서 주저앉으면 될 노릇이냐”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장을 세웠다. 1970년대 자양강장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수액에만 집중했다. “이놈들아 내가 약 만들랬지 설탕물 팔라고 했느냐”는 이 창업주의 호통은 유명한 일화다.

(6) 내실 경영

건설화학공업을 창업한 고 황학구 회장은 부산 초량동 남선도료상회 시절부터 사업장에서 살았다. 가야 공장을 세우고 나서야 49㎡ 남짓한 사택을 지었다. 사택에서 1971년까지 20년 이상 숙식을 해결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공장을 돌아보면서 부서진 상자를 줍고, 고장난 기계부품을 고치면서 내실을 다졌다.

노루페인트 창업주인 고 한정대 회장은 “기업은 소유나 부에 목적을 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노루페인트는 아직까지 사옥을 가진 적이 없다. 한 회장은 “사옥은 나들이옷과 같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일러스트= 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