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차원의 기업인 사정은 곤란…'별건 수사' 관행 큰 잘못"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사진)은 “기업이나 기업인의 범죄 혐의에 대해선 다른 사건이라도 찾아서 수사 결과를 관철하려는 이른바 ‘별건 수사’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27일 말했다. 별건 수사란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당국이 특정한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관련 없는 사안을 조사해 수집한 증거나 정황 등을 이용, 원래 목적의 피의자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수사 방식을 가리킨다.

김 회장은 이날 무역협회와 능률협회가 제주 신라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하계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기업의 활력을 제고하려면 우선 수사당국의 수사 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세미나는 30일까지 나흘간 이어진다.

그는 이날 작심한 듯 원고에 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김 회장은 “수사기관이 본래 수사하고자 한 사건에 대한 혐의가 해소되면 즉각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별건 수사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는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수사는 기업 활동을 본질적으로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차원에서 기업이나 기업인을 사정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기업의 각종 활동이나 기업인의 진퇴 문제를 정권과 연계해서 보는 접근법은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꺾는 것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기업 또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수사나 사법 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최소한의 수사에 그쳐야 한다”며 “근거 없는 루머나 투서인이 자신을 밝히지 않은 음해성 투서 등을 근거로 하는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언급해 가며 수사당국의 관행을 질타했다. 그는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제품 홍보와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목이 붓도록 경제외교를 펼치고 있고, 또 막대한 추경예산 편성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다른 한편에선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주역인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해외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며 정부의 기업 정책을 불신하게 하는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특히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강도 높은 주문을 쏟아냈다. 그는 “검찰 간부, 법무부 장관을 거친 황 총리가 경제와 정무, 사정이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행정 운영을 통해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 회장이 청와대까지 거론하며 작심하고 발언한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검찰의 기업 수사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뿐 아니라 동국제강, SK건설 등 10여개 기업을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기조강연에서 ‘기업가형 국가’를 실현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 할 미래 비전은 지속 가능한 보편성장 경제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기업가형 국가의 실현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시장원리에 충실하게 경제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기업의 활성화가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