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후보 머뭇거리는 사이 힐러리 "인종갈등 여전" 정면돌파

흑인교회 권총난사의 후폭풍이 미국 대선 레이스를 강타할 조짐이다.

백인 청년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인종전쟁을 위해" 흑인교회로 뛰어들어 권총을 난사해, 무고한 흑인 목사와 신자 9명을 살해한 충격적 사건이 미국 내 해묵은 흑백 인종갈등 문제를 건드리면서 공화·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지지했던 남부연합 정부가 사용한 깃발인 "남부연합기는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폐지를 공론화하고,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공공장소에서의 깃발 사용 금지법안을 발의하기로 하면서 논쟁은 가열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종문제의 쟁점화를 정면으로 껴안은 후보는 가장 유력한 주자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보수적 공화당 주자들이 민감한 현안을 놓고 주판알을 튀기는 사이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함으로써 이 어젠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지지기반인 진보층을 탄탄히 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0일 샌프란시스코 시장 협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이런 비극을 단일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유혹이 있다"며 "그러나 우리의 엄청난 노력과 희망에도, 미국의 오랜 인종 갈등은 결코 종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3일 오후 예정된 미주리 주 플로리슨트 시의 흑인교회를 찾아 타운미팅을 하고 백인 청년의 총기난사 문제를 주제로 토론한다.

앞서 그는 전날 트위터 글을 통해 헤일리 주지사의 결정을 칭찬하면서 자신은 "오랫동안 남부기를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이번 사건에 대해 가장 강경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요즘 여론조사 돌풍을 일으키는 진보적 성향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무소속이면서 민주당 후보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그는 22일 "미국의 얼룩진 인종 역사의 잔재인 만큼 남부기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마틴 오맬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도 21일 더욱 강력한 총기사용 규제를 주장했다.

반면, 난립하는 공화당 주자들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남부의 보수적 백인 유권자층을 의식한 탓이다.

특히 남부기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설 경우 이를 가문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생각하는 남부 일부 계층의 감정을 자극해, 지지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공화당의 유력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 19일 범행을 저지른 딜런 루프가 '인종주의자'인지는 불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비난이 일자 권총 난사가 인종적인 이유로 저질러졌다고 말을 고쳐야 했다.

또 헤일리 주지사의 남부기 사용 금지법안 발의에 대해 "옳은 일"이라고 했지만, 명확한 자신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모호한 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공화당 대선후보이자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지역구를 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남부연합기는 우리 일부이기도 하다"며 퇴출 여부에 대한 의견을 보류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도 "외부인들이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에게 필요하지 않다"며 "깃발에서 인종차별과 노예제가 아닌 조상의 희생과 남부 주의 전통을 기억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전략가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워싱턴포스트(WP)에 "대선 레이스는 이런 예기치못한 도덕적 시험으로 점철돼 있다"며 "승리는 결국 그것에 맞서 감당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