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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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있는 김광수 NICE그룹 회장 사무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 3m에 불과해 문을 열면 바로 책상이 닿을 정도다. 회장 집무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소파도 없고 회의용 탁자도 들여놓지 않았다.

김 회장의 딸이 초등학교 시절 그린 그림 석 점이 유일한 장식품이다. 2007년 NICE그룹 회장으로 취임할 때부터 직원들이 “사무실을 좀 넓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김 회장은 매번 손사래를 쳤다. “사무실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사무실을 으리으리하게 꾸밀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다그친다. 기업의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해당 기업을 한 번 더 방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다.

본인도 현장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1주일에 한두 번 이상 사업장을 찾는다. 지난달엔 제조 계열사가 있는 경기 수원과 인천 부평, 충남 아산과 예산, 충북 오창과 충주 등을 하루에 다 돌았을 정도다.

김 회장은 “엉덩이가 너무 가벼워 여러 사업에 손을 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곳에 지긋이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대기업에서 나와 여러 회사를 차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1985년 LG전자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1992년 대학 선배와 함께 정보기술(IT) 부품업체인 KH바텍을 설립했다. 모아둔 500만원과 은행 대출 500만원을 합쳐 1000만원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몇 번의 고비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기술력으로 버텼다.

숱한 위기를 넘긴 뒤 김 회장은 2003년 “회사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KH바텍이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올랐을 때다. 사람들은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는 KH바텍 주식을 판 돈으로 법정관리 중이던 서울전자통신을 인수했다. 당시 매각주관사는 NICE그룹의 전신인 한국신용정보였다. 김 회장은 “NICE그룹 직원들이 너무 열정적이라고 느껴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회사가 매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용평가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보고 2005년 NICE그룹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2007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NICE그룹 내부에선 금융 계열사만 10개가 넘으니 금융업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 회장은 “난 한 곳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남이 안 하는 일을 찾아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게 내 행복”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조건 1등이다”

[비즈&라이프] 김광수 NICE그룹 회장 "시장엔 1등만 남는다…2등은 언젠가 사라질 뿐"
김 회장은 1등을 강조한다. 제조업과 금융업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먼저 하는 걸 좋아하고 나서는 사람을 선호한다. 올해 초 경북 문경으로 극기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 일이다. 50m 높이에서 케이블을 이용해 이동하는 집라인(zip line)을 아무도 타려 하지 않자 김 회장은 “내가 1번으로 탈게”라고 외쳤다. 직원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도전하기를 즐기는 천성 때문에 그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2007년 NICE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금융부문 계열사 대부분을 1위 자리에 올려놨다. NICE평가정보를 업계 선두로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경쟁사를 깎아내리려 하지만 김 회장은 신용평가시장을 키워 경쟁사가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런 뒤 2008년 경쟁 업체였던 한국신용평가정보(KIS)를 통째로 인수했다. 개인 신용평가시장 업체인 NICE평가정보와 ATM 업체인 한국전자금융, 카드결제망 업체인 NICE정보통신 등도 모두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김 회장은 ‘2등 무용론자’다. 2등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고 1등을 하기 위해 목을 맨다. 직원들에게도 늘 “좁은 내수시장에서 언젠가 2등은 사라지고 1등만 남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독려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겨우 시장 점유율에서 1등을 하고 나면 다음 목표를 준다. 김 회장은 “시장에서 1등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과 다른 길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야 진정한 의미의 1등이 된 것”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한다.

자동차·항공기 시장에도 눈독

김 회장은 2010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전자부품과 금융에 이어 소재 사업에도 진출하기로 했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는 경량금속 소재인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서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 만큼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손을 잡았다. 이어 EMK와 아이원, 보원경금속 같은 소재 회사를 인수해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문제는 소재를 납품할 곳이 마땅치 않은 점이었다. 기술력에선 자신이 있었지만 신생 회사의 소재를 받아주는 업체가 없었다. 아예 소재를 사용하는 제조업체를 인수하기로 했다. 수년간 매물을 찾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올해 초 KOTRA에서 고성능 휠 제조업체인 독일 BBS를 소개받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4개월간 가격 협상 끝에 이달 초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2640만유로(약 330억원)를 주고 지분 80%를 받는 조건이었다.

일각에서는 경주용 자동차에나 들어가는 고성능 휠 시장이 작아 BBS의 발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김 회장은 “뭘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BBS는 2017년까지 3년간 총 2억5000만유로(약 3100억원)어치의 수주 물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BMW와 아우디, 포르쉐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 납품하는 업체라 브랜드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김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얘기한다. 회사 경영에 큰 문제는 없지만 미래가 불투명해서다. 올해 NICE그룹의 매출이 1조6000억원이 넘지만 내년 이후 시장환경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다. 김 회장은 빅데이터와 핀테크(금융+기술) 사업을 NICE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및 기업 신용평가 사업을 하기 때문에 빅데이터 사업을 하기에 적합하다. ATM과 카드결제망 같은 금융 인프라 사업과 IT를 접목할 수 있어 핀테크 사업화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탁월한 장수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이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전쟁을 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유리한 경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광수 회장 프로필

△1962년 경북 상주 출생 △1985년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5년 LG전자 입사 △1992년 KH바텍 창업 △2003년 서울전자통신 인수 △2005년 NICE그룹 최대주주로 등극 △2007년 NICE그룹 회장 취임 △2010년 소재산업 진출 △2012년 ITM반도체 인수 △2015년 독일 타이어휠업체 BBS 인수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