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 500조원을 관리하는 조직을 공사화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도 확 바꾼다는 것이다. 노·사 위원 3명씩 등 20명인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중심의 9명으로 줄이되 장관급 위원장을 따로 둔다는 게 핵심이다. 다음주에 공청회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은 해묵은 과제다. 2008년에도 정부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고 2013년에도 이번 개편안과 비슷한 안이 나왔다. 논의의 배경과 명분은 이번에도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다.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높이자는 현실론도 가세하고 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국민연금을 그간의 방식대로 운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2034년에는 2561조원에 이를 정도로 기금은 거대해진다. 더구나 뚝뚝 떨어지는 수익률은 당장의 숙제다. 2010년 10.37%에서 지난해 5.25%다. 저성장·저금리가 세계적 추세라지만 캐나다연금과 네덜란드연금은 지난해 각각 16.5%, 14.5% 수익률을 올렸다. 공사 체제로 외형을 바꾼다고 수익률도 따라 올라갈 것인가.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핫이슈인 의결권 행사만 해도 그렇다. 산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심의안건에 또 올라간다고 한다.

국민연금 운용의 효율성, 전문성,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 원칙부터 재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에서 대리인의 주주권 행사는 어불성설이다.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 같은 전문가도 연금사회주의는 단연코 배척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연금이 정책수단으로 강제 동원돼서도 안 된다. 공사가 되면 필시 자리는 보건복지부가, 운용은 기획재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재정취약 시대, 5년 단임정부들은 어떻게든 국민연금을 쌈짓돈처럼 끌어다 쓰려 할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국민의 노후가 흔들린다. 투명성도 과제다. 경쟁체제나 민영화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다.

독립 공사를 만들게 되면 자칫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할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에 배당을 압박하고 이사선임 등 인사에도 간섭하게 된다. 펀드매니저들은 단기성과를 추구하다 떠나면 그만이다. 국민연금까지 정치판으로 만들 수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