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에 도대체 금융정책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선착순으로 이자를 깎아준다며 국민을 은행 창구에 줄 세우는 정부를 보면서 한국의 금융산업을 걱정하게 된다. 금융산업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정부가 마구잡이로 개입해 시장 질서를 파괴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이자 깎아주는 선착순 대회가 열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해외 토픽감이다. 그것조차 한쪽으로는 가계부채 대책을 걱정하고, 다른 쪽에서는 가계부채를 한껏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인가. 왜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않는지, 금융은 과연 복지사업인지, 대출금리를 정부가 정해도 되는지, 정부가 무슨 근거로 고정대출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금리 특혜를 받는 사람을 정부가 이렇게 줄 세워도 좋은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시장질서도, 자율도, 자기책임도 없는, 한낱 포퓰리즘을 가계부채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당국의 배짱은 또 어디서 온 것인지 걱정스럽다. 주택금융공사의 부실은 한국은행 발권력으로 메워도 좋다는 것인지, 은행들의 손실은 누가 메워줄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관치금융 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다지도 원칙을 팽개친 금융대책은 있어 본 적이 없다.
[사설] 시장경제 원칙 무시한 소위 안심대출
금융은 복지사업 아니다

안심대출 의도 자체는 그럴듯하다. 가계부채 만기 상환위험을 분산하고 금리변동 위험을 완화해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비싼 이자를 싼 이자로 바꿔준다는데 환영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문제는 금융은 복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올 때 우산을 빼앗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금융도 국민경제도 자라난다. 그것을 부정하면 금융도 국민경제도 모르는 사람에 불과하다. 정부는 9억원 넘는 고가주택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기준을 정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은행에서 돈을 꾸는 것이나 금리를 정하는 것은 차입자와 은행의 자율적인 선택이다. 은행은 그 선별작업을 통해 이익을 낸다. 자율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본인의 몫이 된다.

선착순 금리인하는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밖에 없고 하나의 국민을 달리 취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자를 지원해주는 꼴이다. 그나마의 기준이라는 것조차 선착순으로 했다가 집값이 낮은 순으로 했다가 제멋대로다. 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 극히 몰상식적인 정책들이 시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정책 수준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은행과 주택금융공사의 손실 문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총액 40조원의 안심대출이 다 소진될 경우 은행권은 약 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게 된다. 현재 연 3.5%가량인 대출 금리를 연 2% 중반으로 낮추면 1%포인트에 가까운 예대마진 손실이 발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저금리로 수익기반이 잠식되고 있는 은행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다. 최경환 부총리는 평소 금융기관이라는 말 대신 금융회사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금융회사도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나오는 정책은 반대다.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발행해 은행에 대출재원을 제공하는 주택금융공사도 마찬가지다. 기존대출과 안심대출의 이자 차이만큼 자동으로 손실을 떠안게 되는데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국민 세금이다. 재원마련을 위해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출자키로 했다지만 이는 한은법 위반일 가능성이 짙다. 저질의 양적 완화를 은밀히 감행하는 꼴이다. 정부가 할 일을 왜 한은이 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가계부채는 정부가 늘려왔다

지속적으로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써 온 정부가 이제 와서 가계부채 위험을 줄이겠다며 안심대출을 들고 나온 것도 모순이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며 지난해 8월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대폭 높였다. 정부의 바람(?)대로 규제완화 두 달 만에 가계부채가 11조원이나 증가하는 등 가계부채는 증가일로를 걸어 이제는 1089조원까지 늘어났다. 기준금리 인하 역시 가계대출을 늘리는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금리인하는 대출비용 자체를 줄이기도 하지만 전셋값 상승, 주택구매 증가 등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출을 늘리고 있다. 그런 정부가 가계부채 뇌관을 제거하겠다고 나섰으니 모순이다.

떨어지는 환율, 손 놓고 있는 정부

금융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정부의 ‘얼치기 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달 중순 한국은행의 금리결정 회의 직전, 정부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서 전방위적으로 금리인하 압박에 나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금리인하 당위성으로 환율상승의 필요성도 강도 높게 제기했다. 환율을 올려야 수출도 늘고 경기도 살아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작 금리인하(3월12일) 직후 잠깐 1130원을 넘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급격히 하락, 최근엔 11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리인하에도 원화는 오히려 강세로 돌아선 것이다. 당초 의도와 반대로 환율이 움직이고 있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효율성과 자기책임성을 무시한 시장개입은 필시 부작용과 모럴해저드를 부른다. 한국 금융산업이 아프리카 수준이라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안심대출식의 금리개입, 대출개입은 개발금융시대 이후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명확해졌다. 돈을 벌 수 없는 금융에서 세계적 금융회사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한국의 정책당국 때문이다. 전세문제 따위도 그렇지만 수년 내 심각한 금융위기가 터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지금의 정책당국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