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금화도감' 김현정 씨
1426년 즉위 8년을 맞은 세종의 고민은 화재와 절도였다. 세종은 의정부 및 육조 대신들과 함께 사고를 줄일 방법을 논의했다. 이조(吏曹)는 “거리에 사는 지각 없는 무리들이 주의하여 잘 지키지 못하고 화재를 발생시켜 가옥이 연소되어 재산을 탕진하게 되니 백성의 생명이 애석하다”고 보고했다. 이에 세종은 화재 방지 전담 조직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른바 조선 소방대 ‘금화도감(禁火都監)’이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작 ‘금화도감’은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소방 조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예나 지금이나 화재는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가장 큰 위험이다. 당선자 김현정 씨(37)는 “역사 자료를 찾던 중 금화도감의 존재에 강하게 끌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작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고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기획사에 입사했다. 통신사나 자동차 회사의 신제품 발표 행사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점점 경력이 쌓여 안정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작가의 꿈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2003년부터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월 300만원 넘게 받던 직장을 팽개치고 80만원 받으며 작가를 하겠다니 반대가 엄청 심했죠.”

그는 방송국 교양 프로그램 보조 작가로 새 삶을 시작했다. SBS KBS MBC 등 여러 방송사를 거치며 보조 작가에서 메인 작가가 됐다. 김씨는 2010년 다시 한 번 진로를 바꿨다. 교양 프로그램 메인 작가로 순탄히 지내다 2010년부터 방영된 KBS 드라마 ‘근초고왕’의 보조 작가로 자리를 옮겼다. 교양 프로그램은 프로듀서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메인 작가가 글을 써도 100% 반영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드라마 대본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50부작이 60부작으로 연장돼 마지막 두 달은 생방송에 가까운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그는 “8년 동안 교양 작가로 살았던 때보다 드라마 보조 작가 1년이 더 힘들었다”며 “선배 작가들에게 매일 혼났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훈련을 받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근초고왕’ 방영을 마친 2011년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때 만든 작품이 ‘금화도감’이다. 한 방송사의 역사 프로그램 대본을 만들면서 각종 사료를 수집했다. 금화도감이라는 소재도 그때 발견했다. 처음엔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지만 빛을 보지 못해 영화 시나리오로 바꿨다.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제출 마감 직전까지 망설였다.

“전업하기로 마음먹고 작품을 만들던 시절이 너무 힘들었어요. 작가를 하면 고정 수입이 있는데 그것마저 없어지니 틈틈이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눈치가 많이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혼기를 놓친 딸이 안정적인 일을 하며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셨겠지만…. 그래도 참 많이 기다려주셨어요. 저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사극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근초고왕’의 영향도 있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문명이 발달했지만 마음은 더 팍팍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에 옛 사람들의 순수함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김씨의 꿈이다.

“이제 정말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한경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앞으로 작품을 쓸 때 조연 한 사람 한 사람도 작품 속에 녹아들게 하고 싶어요.”

■ 당선 통보를 받고…
한경 청년신춘문예 통해 작가라는 존재감 확인…시대와 사람 외면 않겠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당선 연락을 받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지금도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작가 지망생의 늪을 드디어 빠져나온 것인가 싶어 마음 놓기엔 불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던 나날을 마주하며 누구나 서툴기 짝이 없는 삶의 길에 이제야 방향이 맞춰진 느낌입니다.

묵묵히 지난한 세월을 지켜봐주신 부모님과 동생 윤정이, 평생지기 도미, 드라마 ‘근초고왕’ 작가들께 마음 다해 감사를 표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가 한경 청년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라는 세상의 존재 이유를 찾았듯이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도 희망으로 남고 싶습니다.

앞으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대와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축하해주신 모든 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현정 씨는
△ 1978년 경기 수원 출생 △ 선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 전 방송작가

■ 시나리오 심사평
“신선한 소재·캐릭터 해학성 돋보였다”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금화도감' 김현정 씨
2014년 누적 관객 수가 2억명을 넘었고 한국 영화를 본 관객도 1억명 이상이었다. 누가 봐도 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숫자는 위기를 감추는 환상이기도 하다.

영화계의 미래라고 할 수 있을 새로운 시나리오, 감독, 배우들의 활약이 예년에 비해 미미했기 때문이다. 무난하고 매끈하게 소비되는 작품들이 아니라 서걱거리지만 힘이 넘치는 신예, 영화계는 언제나 그 앙팡테리블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심사에 임하는 심사위원들의 마음도 그랬다.

아쉬운 것은 거칠더라도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원고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글을 찾는 공모전에서 늘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기도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작품으로서의 완결성과 사유의 참신함을 동시에 찾게 된다.

최종적으로 고민한 작품은 ‘개그스타’ ‘원데이’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 ‘태양의 나라’ 등이었다. ‘개그스타’는 만년 무명 개그맨이 어머니를 위해 눈물의 개그쇼를 기획하는 내용이다. ‘원데이’는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뼈대를 갖고 있고,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에서는 사회적 패배자가 된 아버지가 인생 재기의 기회를 찾고자 한다. ‘태양의 나라’는 북한과 한국의 분단 문제를 제3국에서 재고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기존 작품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최종 선택을 주저하게 했다. 눈물, 실패, 재기와 같은 요소들이 이미 유명세를 탄 작품을 환기했기 때문이다.

‘금화도감’은 조선 최초 소방특공대를 소재로 삼았다. 조선 왕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매년 개봉하고 있는 요즘, 소방대라는 소재는 신선하고 새로웠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민적 영웅 캐릭터의 해학성도 흥미로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활발하게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수남·강유정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