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가 재가동된 지 4개월여 만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기본 합의안을 내놓았다. 노동시장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한다는 원칙에 따라 5대 의제, 14개 세부과제를 확정했다. 이 중 비정규직 고용 규제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정년연장 등 현안 과제,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등 사회안전망 정비 등 3개 의제는 내년 3월까지 우선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한다.

진통 끝에 나온 합의안이라지만, 형식적인 선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개혁과제 14개를 나열하고 앞으로 이런 과제들을 또 논의하겠다고 합의한 것뿐이다. 비정규직 문제,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너무 진전이 느리다. 김대환 위원장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협의과정에서 노사 대표들은 고통분담, 소득분배, 해고요건 완화 등 용어 하나하나 표현을 놓고 번번이 충돌했다. 오로지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알맹이 없는 합의라도 발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노사가 더욱 첨예하게 부딪칠 게 뻔하다.

이는 노사정위의 태생적 한계다. 개혁은 기득권을 깨는 것인데, 기득권을 가진 당사자가 합의에 응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는 애초부터 합의가 불가능하다. 노동계의 대표성 문제도 있다. 노조 조직률은 10.3%(2013년)에 불과하다. 이 중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도 20.7%나 된다. 전체 근로자의 90% 이상은 노조 밖에 있다. 상급단체에 가입한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 공기업 등 노동시장의 상층부에 속하는 기득권층이다. 노조 조직률은 세계 최저지만 전투력은 최강인 이유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정위를 만든 이후 노동 개혁이 있어본 적이 없다. 노사정위가 오히려 개혁을 가로막아 왔다고 할 정도다.

구조개혁 기회는 내년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로 내년 1년의 구조개혁이 30년 번영을 좌우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노동개혁이 핵심이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기존 정규직의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적 합의라는 도식에 얽매여서는 될 일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