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파생상품 차라리 다 없애라
“파생상품시장을 고사시켜라!”

지난 2~3년간 정부가 은밀히 수행해온 특명이다. 금융당국이 들으면 뭔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도했든 안했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간 발표된 파생시장 대책이 모조리 시장 죽이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2011년만 해도 세계 1위를 달리던 파생상품 거래량은 이제 10위권 언저리로 추락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씨를 말려 버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역주행, 파생시장 죽이기

파생시장 잔혹사를 잠깐 보자. 글로벌 금융위기와 ‘11·11 옵션 쇼크’가 터지자 정부는 2012년 코스피200 지수옵션 거래단위를 5배 올렸다. 5억원 단위로 거래되던 아파트를 어느 날 갑자기 25억원 단위로만 거래하라는 식이다. 투자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옵션시장을 무력화시키는 과격한 조치였다. 지난 6월엔 ‘파생시장 발전방안’이라는 또 다른 폭탄이 투하됐다. 새로 선물을 거래하려면 30시간 사전교육, 50시간 모의거래를 하라는 것이다. 기본 예탁금도 3000만원으로 두 배로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진입 장벽에 또 하나의 장벽을 추가한 것이다. 최후의 확인사살은 국회가 맡았다. 이달 초 국회는 파생상품 양도차익 과세를 확정지었다. 2016년부터 10~30%의 양도세를 물리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차익거래 유인이 사라져 빈사상태인 파생시장을 아예 궤멸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조치들의 연속이다. 개인투자자 보호가 목적이라면 그 원인부터 찾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거래를 원천봉쇄하는 데만 몰두해왔다. 아이들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교통안전을 강화하는 대신 아이들을 집에만 가두자는 식이다. 사실 돈을 잃은 것으로 따지면 주식시장이 더하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주식 투자도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

금융위기 후 파생상품 규제를 강화한 미국 영국 등을 따라가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주로 장외 파생상품 규제를 강화했다. 멀쩡한 장내 상품을 난도질한 적은 없다. 미국의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은 아직 시행되고 있지도 않다. 중국의 CSI300 지수 선물은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거래량에서 코스피 선물을 능가했다. 일본 도쿄거래소는 오사카거래소와 합병해 5년 내 파생시장을 두 배로 키울 계획이다. 한국만 나홀로 역주행하면서 파생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별 효용도 없는 신규 파생상품은 계속 상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섹터지수 선물이다. 4종 중 2개는 한 달여간 한 건도 거래되지 않았고 나머지 2개의 거래량도 30여계약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동성이 넘치던 코스피200 선물 옵션은 다 죽여 놓고 수요가 거의 없는 상품은 자꾸 상장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무원칙 규제로 증시 전체 침체

원칙은 없고 규제만 계속 늘리니 현물시장까지 동반 추락하는 것이다. 실제 파생시장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 이후 3년간 코스피지수는 1800~2100포인트 벽에 갇혀 버렸다. 파생상품 연계거래가 대폭 줄어든 탓이다. ‘박스피’라는 이름이 대변하듯, 거래량 변동성 모두 쪼그라들기만 한다. 이런 식의 파생시장이라면 차라리 다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근본적 대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