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 간섭 모르는 폴란드 은행
“수백개 은행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적자생존 시장이지만 출혈 경쟁은 없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난 PKO은행의 한국인 부행장이 한 말이다. 국내 은행에서 일하다가 폴란드로 건너가 15년째 현지 은행에서 근무하는 그는 “은행들이 철저하게 수수료 기반 영업을 하면서도 과당 경쟁이 없는 폴란드 금융시장이 처음엔 생소했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1989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중앙은행이 상업은행 기능까지 맡았다. 체제 전환 후 은행 제도를 손질해 상업은행의 신규 설립을 허용하고 국영은행은 민영화했다. 이 과정에서 부실은행들은 외국 은행에 팔렸다. 현재 폴란드에는 상업은행과 외국계 은행, 지역은행을 합쳐 650여개 은행이 영업 중이다.

폴란드 은행들의 모든 서비스는 수수료를 기반으로 한다. 예컨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려면 32즈워티(약 1만원)를 내야 한다. 매월 계좌 관리 명목으로 16즈워티가량을 추가로 내야 한다. 계좌 잔액 증명 등도 모두 유료다.

폴란드 금융당국은 은행의 모든 수익 사업을 시장 논리에 맡긴다. 폴란드중앙은행 관계자는 “은행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원칙은 ‘도와주지 않지만 간섭도 없다’는 것”이라며 “별도의 규제나 행정 지도가 없어 은행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어떤 수익 사업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은행마다 각자 경쟁력 있는 분야를 특화해 과당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환경 덕분에 폴란드 은행들의 수익성은 유럽에서 상위권이다. 작년 폴란드 은행들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1.12%, 자기자본이익률(ROE)은 9.97%다. 유럽연합(EU) 평균인 0.12%와 2.28%를 훨씬 웃돈다.

반면 국내 은행들 간에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빈번하다. 천편일률적인 상품을 팔다 보니 특정 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금리를 내리거나 소비자들이 몰리는 경쟁 은행의 특별판매 상품을 뒤따라 출시하는 식이다. 폴란드 은행들의 반 토막 수준인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 지표를 보면서 “폴란드 은행들은 함께 이기는 경쟁을 추구한다”는 부행장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김은정 바르샤바/국제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