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은 이기심을 길들이는 훈련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으로 사회가 매우 시끄럽다. 땅콩 접대 문제로 부사장이 승무원에게 폭언(행)하고 출발 중에 있던 비행기를 되돌린 게 사건의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시장을 지배하는 사익추구가 빚어낸 결과라는 인식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항공시장을 보면 그런 인식은 졸속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이 사건으로 고객을 잃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종업원을 대하는 기업 오너의 태도에 대한 도덕적 비난도 쇄도한다. 더구나 회사의 평판이 나빠진 건 뼈를 깎는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오너와 회사의 잘못에 대한 그런 처벌은 사익추구 방식을 바꾸라는 항공시장의 훈계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사람들의 동감(同感)을 얻을 수 있는 행동방식을 개발하고 학습할 강력한 압력이다. 따라서 시장의 본질은 이기심의 지배라는 주장은 틀렸다. 기업과 개인의 이기적 행동을 끊임없이 길들이는 게 시장의 본질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이기심의 진화과정이 흥미롭다. 이기심이 행동원리가 된 건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아는 사람끼리의 작은 그룹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지배했는데 그 질서원리는 이타심이었다. 이는 진화심리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구조가 형성되던 석기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함께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인간관계가 아는 사람들끼리보다 낯선 사람들끼리의 관계로 진화하면서 이기적 행동의 여지가 점차 커졌다는 게 진화론의 인식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근대에 등장한 문화적 진화는 이기적 행동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런 행동을 길들이는 체제를 탄생시켰다. 그게 사유재산 계약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이다.

시장은 이기심을 스스로 규율하는 세 가지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첫째는 행동조정이다. 인간들은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 전제가 인간행동들이 서로 조화로워야 한다는 의미의 행동조정이다. 이게 노동자와 사용자가 멋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다.

이기심을 순화하는 두 번째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유인하는 기업들의 경쟁이다. 이게 사익추구를 통제한다. 품질이 나쁨에도 비싸게 팔아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시장은 내버려 두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걸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윤추구 방법을 바꾸는 방법밖에는 다른 게 없다.

사익추구를 훈계하는 마지막 세 번째는 예의범절, 재산존중, 상(商)관행 등 자생적으로 생성되는 행동규칙들이다. 이들을 안 지키면 사람들은 조 전 부사장처럼 불특정 다수로부터 비난을 받고 평판도 나빠진다. 그 결과 사업파트너로 선정되지 못하고 배척당한다.

따라서 직시할 것은 시장은 사익추구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절제와 신중의 미덕을 배우고 훈련해 이기심을 길들이는 거대한 학습장이라는 것이다. 이 속에서 기업과 개인들은 타인들의 동감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행동방식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검증한다. 인류문명과 번영은 시장의 그런 진화의 결과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불필요한 것도 인간행동을 길들이는 시장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길들이는 과정에서 빈곤, 실업, 성장 등 경제문제도 시장 스스로가 해결한다. 그래서 시장은 ‘자생적 질서’라는 하이에크의 인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이 지배하고 있기에 정부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시장의 자율규제를 알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대기업·수도권입지·환경규제 등 규제가 첩첩이 쌓인 것, 아무리 규제개혁을 소리높이 외쳐도 규제가 줄어들지 않는 것도 그런 무지의 소치다.

그러나 정부규제는 인간행동을 길들이는 학습과정을 왜곡할 뿐이다. 그 결과는 실업, 빈곤, 저성장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그런 왜곡의 치명적인 결과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기심, 탐욕을 두려워 말고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게 문제의 해법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