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술 교육, 돈과의 전쟁인가
며칠 전 발레를 배우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어머니가 상담을 요청해왔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녀를 예술학교에 보낸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엄두가 나지 않아 발레를 그만두도록 아이를 타일러야겠다고 했다. 예술교육은 ‘돈과의 전쟁’이어서 시키지 못하겠다는 설명이다.

이 세상에 내 아이와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아무개가 어떻게 해서 성공했더라’ 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예술학교 못 간다’는 식의 말은 내 아이가 아닌 그야말로 남의 집 이야기에 불과하다.

가난이 훌륭한 예술가를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 작은 얼굴과 긴 팔다리를 가진 어린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일부 학교의 입학기준도 문제가 있다. 발레 장르 전체가 발전하려면 무용수만 필요한 것이 아닌데, 지난 50여년간 우리는 무대에서 공연할 무용수를 키우는 데만 치중했다.

미국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서울발레시어터 안무가 제임스 전은 자신이 한국에서 발레교육을 받았다면 예술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무용과에 입학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키도 크지 않고 평발인 제임스 전을 뽑은 이유는 오디션 때 보여준 춤에 대한 열정과 소질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발레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원하면 공부할 수 있는 사회적 동의와 시스템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가족들의 지원으로 발레를 배웠다.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왕립발레학교 유학길에 올랐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전액장학생으로 선발돼 학비를 면했다. 식구들은 타지에 있는 내게 돈을 보내느라 전세금까지 내줘야 했다. ‘어떻게 번 돈으로 나를 가르치는지’ 생각하면 힘든 순간에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로 성장하려면 인내와 노력은 물론 의지와 열정, 가족의 전폭적 지지가 필요하다. ‘예술은 돈과의 전쟁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불안감을 키우고 결국 내 아이의 꿈을 접게 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열정과 의지가 확고하다면 자녀와 교사를 믿고 아이의 성장을 인내로 지켜보는 것이 훌륭한 예술가를 키우는 지름길이다.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