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인트] 글루텐 프리 식품 고집할 이유 없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까마귀가 뜻밖의 의심을 받는다는 얘기다. 일종의 누명이다. 밀가루가 이런 처지다.

밀은 쌀 보리 콩과 함께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에 힘을 불어넣어준 농산물이다. 이 농산물은 우리 체질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에 신토불이(身土不二) 음식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유독 밀가루만 오해에 휩싸이고 있다. 빵 과자 피자 만두 파스타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이 소화불량과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식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밀가루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루텐은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이다. 쫄깃한 맛을 내주고 면발을 길게 늘이거나 발효 때 몽실몽실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미셸 오바마 여사 등은 최근 글루텐이 셀리악병의 원인이란 이유로 ‘글루텐 프리(gluten free)’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글루텐이 제거된 식품이 인기다.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셀리악병은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특정 유전자에 변형을 일으키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인체에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질이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판별하는 ‘항원제시세포(APA)’가 있다. APA의 표면에는 단백질인 식별센서(HLA)가 붙어 있다. 이 식별센서가 글루텐 성분과 결합할 때 글루텐은 적군이 아닌 아군으로 인식되며 아무 이상 없이 장세포를 통과해 물질대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매우 특수한 경우다. 정상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 돌연변이 유전자가 될 수 있다. 문제의 셀리악병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이 유전자로부터 합성된 식별센서는 본래 기능과 달리 글루텐을 적군으로 인식한다. 글루텐과 결합하는 장세포로 대량의 공격 부대(면역세포 및 항체)를 보내 장의 점막세포를 파괴한다. 융모가 소실돼 영양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없도록 만든다.

바꿔 말하자면 글루텐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특정인에게만 문제가 된다. 더구나 돌연변이 유전자는 백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인과 흑인 중에서 발병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제로’에 가깝다. 한국에서 셀리악병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단 한 명밖에 없는 게 그 증거다.

일반인에게 ‘글루텐 프리’ 밀가루는 필요 없다. 정상적인 식별센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글루텐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훌륭한 식품이다. 미국에서 글루텐 프리 식품이 유행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그대로 따른다면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오히려 몸에 해로운 일을 벌이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밀가루 음식을 섭취한 뒤 소화불량 및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은 건 왜일까. 이것은 유전적 특이 체질을 가진 일부에게는 밀가루 성분이 여러 경로를 통해 질환에 관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현대인의 식단에서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기는 매우 어렵다. 비셀리악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밀가루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좀 더 진척돼야 한다. 국내에서 밀의 특정 성분이 소화불량과 알레르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유전적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들도 마음 편하게 밀가루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이남택 < 고려대 교수·분자생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