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배경에는 현재 여야 정치권 구도상 인사청문회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정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총리 지명 뒤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킨 KBS 보도에 대해 최근 각계에서 ‘짜깁기 보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전날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인 고(故) 문남규 선생이 문 후보자의 조부로 추정된다고 밝히면서 명예회복의 토대가 마련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 후보자는 이날 사퇴 회견에서 준비해온 A4용지 4장 분량의 원고를 13분 넘게 읽어내려가면서 때론 눈물을 보이며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만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그는 먼저 “법을 만들고 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다.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며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런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자진사퇴 압박에 반감을 드러낸 것. 이어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에서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며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국민의 뜻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때 민주주의 위기"
언론에 대해서도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라며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으로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KBS 등 일부 언론이 자신의 교회 강연 일부를 인용해 자신을 ‘친일’ ‘매국노’로 몰아간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교회 발언에 대해서도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 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이라는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히셨다”며 “저는 그렇게 신앙 고백을 하면 안되고 김 전 대통령은 괜찮은 것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문 후보자는 전날 보훈처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문남규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손자”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회견 초반에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고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도와드리고 싶었다”면서도 “(총리 지명 뒤 국론 분열로)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언급했다.

문 후보자는 회견 말미에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하며 회견을 마무리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