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벌써 한 달이다. ‘이제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말할 때’라는 외국인의 조언이 나오지만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단지 일상이 아니라 이성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진정 옳은 답일 것이다. 극한의 슬픔조차 정치투쟁으로 바꿔치려는 세력까지 발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냉철한 원인분석과 합리적인 해법 모색조차 진도를 못 낸다. 진정 한국 사회의 복원력이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개조론까지 거론됐다. 정부는 어떤 방안을 내놓을 것인가.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는 3시간의 난상토론이었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통령은 조만간 사회안전 국가개혁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부실·무능·무책임·비효율이 바다의 일만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법 무시, 규정 무시의 후진적 문화를 걷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관피아 논란의 진원지인 행정규제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혁파하고, 자유시장의 원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안전을 잘 생산해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정부만의 책임도 아니다. 국민 모두가 공화주의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무슨 사회안전이 가능하겠는가. 이 모든 것에 앞서 국가개조의 첫째 조건이자 원칙은 바로 법치주의의 확립이다.

법이 없어서? 3200개 안전 매뉴얼은 허공에

세월호 침몰의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은 수사결과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평형수, 과적, 불법적 선실 개조, 선장과 선원의 임무해태, 해경의 무능, 해수부의 무능과 부패, 월권과 직무유기, 안행부의 위기대처 능력 부재, 지자체 공무원들의 인허가권 남용, 현장의 허위보고와 부실대처…. 총체적 부실일 것이다. 이 모든 행동의 규칙을 정하는 법과 규정들은 과연 얼마나 지켜졌을까.

법이 없어서 세월호가 침몰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다른 수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규제 입법은 언제나 대량생산됐다. 날림으로 만들어졌고 해당분야의 ‘전문가’들부터가 이를 무시했다. 안전 매뉴얼이 3200개에 달한다지만 지키는 사람도 그 규정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물망 같은 법과 규정들은 관료들의 일자리가 필요하거나 호주머니가 가벼울 때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던 것이다.

준수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점검도 어려운 쓰레기법만 무수히 만들어온 것이 해양안전이나 연안여객 사업 분야만도 아니다. 정말 최소한으로 만들되 만들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진정한 법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명이 어기면 재수없는 범법자지만 여러 명이 무시해버리면 그저 관행이 되는 식으로 우리가 살아왔던 것이다.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집단으로 깔아뭉개자는 떼법은 아예 문화가 돼버렸다. 이 순간에도 국회의원들은 방방마다 허울 좋은 법과 규정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쏟아지는 민원이란 것의 태반이 탈법에 대한 요구다. 잘 해결하면 정계의 실력자가 되는 것이다. 싸구려 민주주의는 그렇게 탈법조차도 표와 거래돼 왔다. 그런 싸구려 민주주의를 걷어내는 것에서 비로소 법치는 출발한다.

법의 타락이 법과 규정 무시 만연케 해

법의 양산도 문제다. 남발되는 법률에 존중심을 가질 사람은 없다. 의원들은 법안 개수로 실적을 경쟁하는 천박한 법의식에 매몰돼 있다. 모범규준을 법률로 만드는 법의 타락이 나타난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입법부가 원칙도 철학도 없는 값싼 법을 양산하자 최근에는 사법부조차 법을 타락시키고 있다. 엉터리 판사들이 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정치집회들이 쏟아지지만 판사들은 너무도 가볍게 면죄부를 준다. 도로 위의 이준석들이다. ‘법을 지키면 바보’라는 말에 사법부는 답해야 한다.

입법 만능은 법을 정치의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다수결로 합의하기만 하면 법이 된다는 천박한 법의식은 법치주의의 가장 심각한 파괴자다. 그런 입법관은 결국 국회를 싸구려 정치판으로 만들어 법에 대한 존중심을 뿌리에서 뽑아버리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만능적 무질서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연의 자유가 보장되는 법에 대한 존중심이 재건되지 않으면 세월호의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법이 법답게 누구에게라도 분명한 신호가 되려면 법에 대한 시민들의 존중심이 복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의 법질서라야 한다. 법으로의 귀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