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규제개혁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정작 일선부처는 빠져나갈 구멍 찾기에 혈안이라고 한다. 신설 규제를 도입할 때는 동일 비용의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이른바 규제비용총량제가 실시도 되기 전에 우리 부처는 예외로 해달라는 요구들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2017년까지 20% 감축도 공염불이다.

국무조정실은 규제건수가 20건 미만인 부처에 한해 규제비용총량제 의무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지만 이런 예외를 두는 순간 규제개혁은 그만큼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 기준대로면 당장 국무조정실 농촌진흥청 등 7개 부처가 규제비용총량제를 비켜갈 수 있게 된다. 이들 부처의 경우 규제건수가 미미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 기존 규제를 없애기가 물리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데 도대체 이런 논리는 어디서 온 것인가. 결국 규제는 곧 공무원들의 권력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레토릭밖에 안 된다.

당장 국방부 외교부도 자신들은 예외로 해달라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외교·안보상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구실을 갖다 붙이기로 치면 규제개혁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부처가 없다. 경제규제가 394개에 이른다는 공정위가 바로 그 대표적 케이스다. 담합 금지 등 120개 규제는 규제가 아닌 규칙이므로 빼달라는 게 공정위 요구다. 좋다! 그러면 120개를 뺀 나머지 274개는 모두 철폐할 것인가. 규칙이라는 주장도 허구의 논리다. 시장의 광역화와 개방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담합이나 시장지배자 규제는 그 자체로 고비용 규제다. 더구나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 하도급개정 등 덩어리 규제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게 규제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규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부처들이 없애야 할 규제, 지켜야 할 규제를 멋대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개혁에 대한 저항이다. 규제 20% 감축을 둘러싸고 벌써 각 부처가 힘겨루기에 본격 돌입한 양상이다. 10년 전 규제총량제가 도입됐을 때와 흡사하다. 관료들의 저항에 밀리면 규제개혁은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