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줏집 여인이 맥주 값으로 곡식
[천자칼럼] 에일맥주
대신 귀중한 은전을 요구하거나 맥주 양을 적게 주면 벌을 받을 것이며 물속에 던져지리라.’ ‘맥주 60실라(약 30L)를 외상으로 주면 추수 때 곡식 50실라를 받으라.’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맥주 관련 조문이라고 한다.

맥주의 역사가 기원전 6000년까지 올라간다니 보리·밀의 최초 경작 시기와 맞먹는다. 그 시절에도 술값 시비와 외상술 풍경은 지금과 같았던 모양이다. 술은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발효방식은 에일(ale), 라거(lager), 람빅(lambic)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 중 에일과 라거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가장 전통이 오랜 맥주는 에일이다. 발효 때 위에 떠오르는 효모로 만들기 때문에 상면(上面)발효 맥주라고도 한다. 향긋하면서 진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거품이 진한 영국 포터, 아일랜드의 기네스, 벨기에의 호가든, 독일의 바이스비어나 쾰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계 맥주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유럽의 하우스맥주도 대부분 이 계통이다.

라거는 19세기 중반에 나온 하면(下面)발효 맥주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장해 만든다. 에일맥주보다 향과 깊은 맛이 적은 대신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을 자랑한다. 체코 필센 지역에서 처음 양조한 필스너를 비롯해 둥켈, 슈바르츠, 엑스포트 등이 대표적인데 현대 맥주의 70%가 이 계열이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 맥주가 처음 들어왔다. 국내 생산은 1933년 일본 회사들이 만든 삿포로(후의 조선맥주)와 쇼와기린(후의 동양맥주)이 최초다. 6·25 직후 세금 많이 낸 회사 3, 4위가 동양맥주와 조선맥주였다니 놀랄 만하다. 그러나 국산 맥주는 밍밍하고 맛이 없다는 소리를 오래 들어야 했다. 시판 맥주 500여종 중 수입 맥주가 455종에 이를 정도다.

최근 맥주회사들이 벌이는 신제품 경쟁의 승부처가 에일맥주라는 게 흥미롭다. 하이트진로가 지난 가을 퀸즈에일을 내놓으면서 불을 댕기자 오비맥주가 얼마 전 에일스톤으로 맞불을 놓았다. 가벼운 맛의 라거맥주 일변도였던 국내 시장에서 걸쭉하고 묵직한 에일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인 롯데주류와 신세계까지 맥주전쟁에 뛰어들 예정이다. 주당들은 신이 났다.

마침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으로 수출된 맥주가 지난해보다 20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모처럼의 ‘대박 경쟁’을 통해 맥주 맛도 더 좋아지고 수출까지 급증하기를 기대해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