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6·4 지방선거에 바라는 희망
외국에 오래 살았던 지인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초고층 아파트촌으로 변한 것을 보고 적잖이 실망하는 걸 보았다. 당연히 빠른 도시화의 물결에서 예상했으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필자가 사는 서울 마포도 요즘 들어 자고 나면 건물이 선다고 할 정도로 재개발이 한창이다. 능력이 된다면 현대식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단독주택에서 정원이라도 가꾸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그나마 아직 현대식 아파트 뒤편에 설렁탕집 등으로 변하긴 했지만 정겨운 한옥 기와집이 더러 남아 있어 위안이 된다. 하지만 임대료가 싼 낡은 건물이 헐려 재래식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재개발계획이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았고 실제로 그 때문에 마포와 같은 지역은 지금 천지개벽 중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조금 다른 모습이 감지된다. 서울·수도권 단체장 후보자들을 보면 재개발을 무조건 내세우는 게 아니라 지역 사정에 따라 재개발 사업을 재개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재개발 사업을 해제하겠다는 식으로 갈리고 있다. 전·월세난 해소를 위해 신규 분양은 줄이고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이 많이 나오고 있고 계층 간 갈등을 줄이는 소셜믹스 방식도 대두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다 보니 당장이라도 내 고장을 천국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후보들의 재개발 공약은 확실히 준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공약을 지키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드는가보다는 유권자의 눈길을 끄는 정책이 우선이다. 지자체장이 돼 공약을 지키려면 중앙정부에서 더 받아내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은 지방채를 발행하는 등 지방정부가 빚을 지거나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최근 5년을 놓고 보면 2011년을 빼고는 지방세수 증가율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지방세수는 5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년과 비교해 겨우 3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서울시는 4년 연속 세수부족 때문에 감액추경을 해야만 했다. 경기도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작년에 3875억원 감액추경안을 편성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예비후보 간 경쟁인데도 벌써부터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지역개발공약의 남발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공항이든 도로든 무조건 짓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최근에는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이슈와 그 파장이 정당정치의 흐름을 바꾸고 대선에 영향을 줄 정도로 지방선거가 중요해졌다, 대선이나 총선에서보다 지방선거에서 더 강조되는 것은 주민 삶의 질에 대한 접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참여형 생활정치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그런데도 한꺼번에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그리고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까지 모두 일곱 종류의 투표용지에 해야 하는 선거이다 보니 어느 후보를 뽑아야 할지 심란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공약을 꼼꼼히 읽고 따져도 제대로 뽑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대표를 뽑는 기준을 좀 더 주민에게 와 닿도록 전과기록, 체납실적과 더불어 세금납부 기록을 해당지역 선관위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정리해서 주민이 잘 보는 곳에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적어도 지역주민을 대표해 지역살림을 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최근 3년간 국세와 지방세 세금납부실적을 보고 유권자들이 뽑아주고 싶은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은 세금 포탈 및 탈루자를 지방선거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아니 세금을 제대로 안 낸 사람은 본인 스스로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풀뿌리 생활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공동체를 제대로 만드는 길이다. 정치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그에 따르는 난개발과 재개발이 이어졌어도 지역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의 주민자치를 통해 현대식 건물과 재래가옥이 공존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왔다. 다가오는 6·4 지방선거부터라도 후보자의 지방세 납부를 먼저 따지는 선거를 만들어 가길 제안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