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美상원의 훈훈한 만장일치
미국 상원은 11일(현지시간) 전체회의에서 5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소녀의 이름을 딴 ‘가브리엘라 밀러 어린이 지원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작년 말 하원이 찬성 295, 반대 103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상원에서 전원 찬성으로 가결처리했다. 법안의 핵심은 전당대회에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4년마다 개최하는 대통령후보 선출 전당대회에 약 1억3000만달러의 국고가 지원되는데 이를 국립보건원(NIH)의 어린이 난치병 연구비로 돌리겠다는 내용이다.

버지니아주 리스버그에 살던 밀러양은 아홉 살이던 2012년 12월 암 진단과 함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밀러양은 그 후 여러 기관 등에 편지를 써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재단’의 모금활동에 나섰다.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소아 난치병 연구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소아암 관련 책을 내고 세난도어대로부터 명예학위를 받는 등 소아 난치병 퇴치 운동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표결 직전에 “전당대회의 정부 지원금을 소아병 연구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원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한 용감한 소녀가 의회의 초당적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며 “의회가 항상 당파 싸움만 하는 건 아니다”고 자평했다. 현지 언론들도 역대 최악의 평판을 받고 있는 정치권이 오랜만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행동이었다고 보도했다.

미 의회가 지난해 10월16일간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업무 정지) 사태를 겪을 당시 일부 의원들은 셧다운 기간 중 세비를 국고에 반납하거나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세비 반납을 약속한 244명 가운데 최소 116명이 ‘무노동 무임금’ 약속을 지킨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미국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이 여론과 표를 의식한 것일 수 있지만 한국 여의도에선 이런 행동을 기대하기가 아직 어렵다는 게 씁쓸하다.

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