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 '母性 미학' 만나볼까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예술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린아이의 모습을 즐겨 그린다.”

‘국민화가’로 손꼽히는 박수근 화백(1914~1965년)이 평생 견지했던 조형미학이다. “궁핍했던 시절에도 잃지 않았던 가족애와 인정을 되살리며 항상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작업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그였다.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은 그의 열정적인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판화전이 10~28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다채로운 기법의 판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프린트 판화를 보면서 작품의 시장성과 원본·사본의 관계 등을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다.

궁핍했던 시대를 화강암 같은 질감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그의 그림들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난한 화가의 일생이 고달팠기 때문일 것이다.

‘여인과 나무’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54년 국전 입선작인 ‘절구질하는 여인’을 비롯해 ‘두 여인’ ‘귀로’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독서’ ‘젖 먹이는 여인’ ‘노상’ ‘골목안’ ‘길’ 등 20여점이 걸린다.

서민들의 애환을 향토적인 질감에 담아낸 대표작은 역시 1950년대 작품 ‘나무와 두 여인’이다. 고목을 경계로 걸어가는 두 여인의 대조적인 포즈가 흥미롭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상징되는 가난한 시대의 삶, 그 속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풍경이 묘한 울림을 준다.

1964년 작 ‘아기 업은 소녀’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봐야 했던 우리 큰 언니·누나들의 모습을 향토색 짙은 미감으로 묘사한 작품. 부드러운 붓질로 서민들의 일상을 형상화했다. 또 1962년 작 ’귀로’에서는 소박한 여인이 물건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화강암처럼 투박한 질감으로 그렸고, 1962년 작 ‘노상’은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대화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정감 있게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하는 여인으로 채워져 있지만 이번 전시에는 남정네를 그린 것도 나온다. 특히 1963년 작 ‘농악’은 부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소외된 계층을 리얼하게 포착했다. 기름기 없는 무채색으로 윤곽선을 애써 감추는 독특한 박 화백의 풍경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서민들의 애환을 독특한 질감의 화면에 담아내 한국 화단의 최고 인기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품 ‘빨래터’는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한국현대회화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팔렸다. 문의 (02)360-42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