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이 사람들, 올해는 무슨 해코지를 할지…
새해 첫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뭔가 나아질 조짐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연말 분위기를 느껴본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참 어두운 세밑이었다. 그 속을 허둥대다 보니 어느덧 2014년이다. 희망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밖에 나가 보라. 대로변에서 한 발짝만 골목으로 옮겨도 찬바람이 분다. 강남도 마찬가지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던 식당부터 줄줄이 사라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식당만이 아니다. 10년 넘은 단골식당에도 폐업 딱지가 나붙었다.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지난해 퇴출된 자영업자가 7만명이다. 사업을 접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다. 새롭게 자영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엄청난 규모다. 이 사람들, 1인당 금융권 대출이 임금 근로자의 세 배다. 갚을 길은 막막한데 이자는 한없이 불어난다.

가계부채가 지난 연말 10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 빚이나 다름없는 개인 자영업자의 빚까지 합치면 1200조원이다.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규모다. 개인 빚이 이 정도라면 2~3년 내 금융위기가 덮친다는 것이 경험칙이다. 부동산 경기는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데 가계대출의 대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이다. 담보가치는 떨어지고 갚을 능력은 없다. 전세대출도 마찬가지다. 가계 빚 폭탄의 심지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일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실업자고, 아들은 청년 백수다. 건설업계에서 시작된 대기업의 몰락은 이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멀쩡한 기업이 없다. 삼성이 좋다지만, 전자를 제외하면 돈벌이가 고만고만하다. 잘나간다던 현대·기아차도 환율 탓에 난관을 만났고, SK는 인수한 하이닉스가 아니었다면 지난해 죽을 쑬 뻔했다. LG나 포스코도 부진하다. 5대 그룹이 이러니 나머지는 어떨까. 어려워도 인재를 확보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기업이다. 하지만 이제 여력마저 바닥났다. 모두 구조조정 중이다. 증권 등 금융업계의 칼바람은 더 매섭다. 채용을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입사필기시험에 10만명이 몰려드는 시대다. 수십 통의 입사지원서를 써 봐야 나에겐 한 차례의 면접 기회조차 오질 않는다. 오죽하면 취업을 이유로 졸업을 미루는 ‘모라토리엄족’이 10만명을 넘을까. 말도 안 되는 ‘안녕들 하십니까’ 선동에 그 많은 대학생들이 열광한 이유다.

중소기업은 말하면 뭐하겠는가. 일감이 줄어들면서 공단의 밥집과 도시락 배달집까지 문을 닫았다. 갑을논쟁까지 부메랑으로 돌아와 제 발등을 찧었다. 재고가 쌓이면서 조업단축과 휴·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기진맥진이다.

환율은 올해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원·엔 환율은 1000원 선이 무너졌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속도를 내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출 경쟁력은 곤두박질친다.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역시 정치권이다. 증세는 없다던 박근혜 정부의 원칙은 부자 증세로 무너지고 말았다. 세수 효과도 크지 않고 소비와 투자만 위축시킬 것이라며 모두가 반대하던 증세다. 경기가 죽든 살든 표만 긁어모으면 된다는 이판사판식 정치인들이다. 정치라는 게 원래 이런 거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한 야당 의원은 세밑을 넘겨 새해 첫날까지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처리에 끝까지 고춧가루를 뿌렸다. 당장 2조3000억원의 투자와 1만4000명의 일자리가 걸린 법안이다. 정치적 목적만 이룬다면 뭐는 못하겠는가. 경제활성화 법안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천둥벌거숭이들이다.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봉착한 한국 경제다. 내수 부진 탓에 저물가까지 겹쳐 일본식 장기 불황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정치권이 앞장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해도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6월 지방선거 체제다. 경제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이 사람들, 표몰이를 위해 경제에 또 무슨 해코지를 할지, 그게 걱정스럽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