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기어코 증세카드를 빼들었다. 우선 38%인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대상이 연소득(과세표준)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확 내려간다. 기업에는 각종 감면혜택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으로 내야하는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16%에서 17%로 올리기로 여야가 전격 합의해버렸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공약이 1년 만에 공약(空約)이 되는 상황이다. 올 들어 세수부족 때문에 연일 세원확대에 골몰해온 기획재정부조차 “세수 효과도 크지 않고 소비와 투자만 위축시킬 것”이라며 증세 야합에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인의 도덕성 타락이다. 복지는 타먹고 싶고 세금은 네(부자)가 내라는 그런 나라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고소득층의 세금이 적은 게 아니다. 지난해 납부된 15조1706억원의 종합소득세 중 49%를 상위 1%가 부담했다. 상위 10%로 넓혀보면 무려 86%가 된다. 소득세수에서 상위 1%의 납부비율은 미국(40%·2006년), 영국(24%)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법인세의 상위기업 기여율은 더욱 크다. 지난해 법인세액 40조3375억원 중 86%를 1% 기업이 냈다. 그런데도 내년도 사상 첫 100조원 복지예산을 부자증세로 메꿔나가자고 합의한 것이 한국 정치인들이다.

민주당의 생떼에 철학이라고는 없는 새누리당이 어물쩍 동의해버린 결과가 부자증세다.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선이 1억5000만원으로 내려가면 추가세수는 연 3200억원에 그친다는 게 기재부 추계다. 350조원 예산의 0.1% 미만을 확충하려고 가뜩이나 나쁜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법인세도 이미 OECD 국가 중 5위로 높다.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경쟁을 감안하면 역주행이다. 법인세를 깎아주면서 투자를 유도하는 다른 나라와는 반대방향이다.

증세는 없다던 박근혜 정부의 원칙이 어쨌든 무너지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이번 증세안을 사실상 이미 몇 년째 시행해온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안’과 맞바꾼 뒤 한동안을 쉬쉬해왔다고 한다. 국가경제의 기본 원칙도, 우선 순위도 모르는 처사다. 새누리당이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