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 '안목 싸움'이 미술계 희망이죠"
“경기침체와 미술품을 둘러싼 비리 사건 등 잇단 악재로 몇 년째 허덕이고 있는 한국 미술계는 올해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면서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1년 내내 그림 한 점 못 파는 화랑이 있을 정도예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올해로 개관 30년을 맞은 가나아트갤러리의 이옥경 대표(53·사진)는 25일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문화계 전반이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미술 비즈니스는 특히 힘든 해였다는 것. 불황에 개의치 않는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구사해 ‘미술계의 여걸’로 불리는 그 역시 침체된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했다.

악재는 꼬리를 물었다. 20여년간 논란을 거듭해 온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가 올해부터 시행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횡령 혐의 수사 과정에서 고가의 미술품이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여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미납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검찰이 압류한 재산에 상당 규모의 미술품 컬렉션이 포함됐다.

미술품이 비자금 은닉 수단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미술계의 ‘큰손’들은 지갑을 닫았다. 화랑가를 향한 발길도 뚝 끊겼다. 이 대표는 “미술계를 마치 ‘검은돈’의 온상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미술계뿐 아니라 경제나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미술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올해 초 열었던 개관 30주년 기념전 ‘나의 벗, 나의 애장품’을 기획하면서 국내에도 단순히 돈이 많은 수집가가 아니라 진정한 미술 애호가가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술품 컬렉션에서 중요한 것은 돈의 경쟁이 아니라 ‘눈의 경쟁’입니다. 애호가들의 안목 싸움이 치열한 만큼 문화예술의 격이 올라가고 예술감상의 저변을 확대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거든요.”

화랑을 ‘문화 사랑방’으로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그동안 300차례가 넘는 전시를 기획했다. 작가들의 ‘끼’와 열정을 사들이기 위해 2001년 평창 아틀리에를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확장해 2006년부터 장흥 아틀리에에 70여명의 작가가 입주한 창작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해 화랑을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는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 장 드뷔페, 조르주 브라크,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했다. 또 스위스 아트바젤과 파리국제아트페어(FIAC·피악) 등 대규모 국제 아트페어를 100차례 넘게 쫓아다니며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전시했다. 만만찮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지만 해외시장 개척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유럽 홍콩 등의 새해 미술 시장은 회복세가 완연할 것으로 낙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말 5달러에도 못 미쳤던 소더비의 주가가 최근 50달러까지 상승하는 등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국내 시장 역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는 그는 새해 첫 전시로 국민 화가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계획하고 있다. 또 장흥과 평창동 아틀리에를 거쳐간 작가 100여명이 참여하는 작품전, 극사실주의 화가 고영훈 이원희 한진섭 씨의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