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
문학상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다. 상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 또한 대단히 영광스럽겠다. 그러나 그 기쁨과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 꼭 상을 받거나 줄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며칠 전 모 문학잡지가 주관하는 시상식에 갔을 때도 그랬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시인,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온전하게 기쁜 일인 것만은 아니다. 등단이 작가로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물질적 부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등단했다고 한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선 또 다른 매체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대개의 경우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누가 이 시간과 싸워 이길 수가 있겠는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자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많은 신진 작가들이 이 기간의 고독과 자기연민, 물질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는 일은 여전히 기쁜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올해의 수상자들은 선배들의 애정 어린 우려와 충고가 무색하게 젊음과 패기로 가득 찬 수상 소감을 선보였다.

강원도 속초 고향에서 군 입대를 기다리던 중 수상소식을 듣게 된 한 수상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에 겨워 택시를 전세 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하필이면 몸이 너무 아파 버스를 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속초에서 서울까지 전세 택시비는 무려 이십만 원. 조만간 한국문학사 최고의 소설을 쓰게 될 이 신인은 자기의 한 달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택시비를 지급하고 택시 뒷자리에 누워 생각했다고 한다. 아, 다 괜찮다, 나는 행복하다.

또 다른 수상자는 준비해온 수상소감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수상자는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열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 수상자의 부모님은 파주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전화를 끊고 그 야심한 밤에 차를 운전해 파주출판단지로 달려갔다. 딸의 소설을 당선시킨 출판사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차를 주차한 뒤 그 출판사 주변을 일곱 바퀴 돌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저절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세상이 모두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것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갈 때, 여전히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는 이토록 아무 것도 아닌 어떤 것에 열광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문학상 시상식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자리다.

그런데 때로는 이 소박한 확인의 장마저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검열과 관련해 전통 있는 문학상을 반납할 수밖에 없게 된 수상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수상자들이 수상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들의 기쁨은 택시비가 얼마가 나오든 그 어디라도 달려갈 태세가 돼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수상 소식을 듣고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하고도 충만한 기쁨을 맛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들이 오랜 고민 끝에 결국은 수상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그들 개인의 기쁨보다 문학의 미래, 문학의 자유를 더 생각한 결과이다. 아마 우리는 그들의 수상 소감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아깝고 안타깝다. 그러나 더 무엇을 말하랴. 때로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다만 앞으로는 이런 식의 ‘수상소감을 말할 수 없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상소감을 듣는 것은 수상만큼이나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일에 동참하고 싶다.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문창과 교수 ssjjj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