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정건전성을 사수하라
한국 경제가 연평균 3% 선의 저성장 추세에서 6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세수도 늘지 않아 국가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보편적 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고, 선거에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공약가계부를 만들어 재원조달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다.

박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증세(세율 인상) 없는 복지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세수 증가를 뒷받침할 경기회복이 너무 더디고 불확실하다. 결국 금년에도 17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내년 예산안도 35조원의 국가채무를 늘리는 방향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복지공약을 약속대로 추진하라고 윽박지르며 부자증세만 노래하고 있을 뿐 재정건전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글로벌 경제 상황을 돌아보면 미국은 오바마케어라는 복지확대정책이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내년 예산안이 미확정 상태에 있을 정도로 재정건전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국가부채가 저성장 탈피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 수습 노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복지는 줄이기 어렵고, 증세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전 세계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때문에 망가진 재정건전성을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으나, 그 치유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재정준칙을 강화해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국내외 상황 속에서 한국이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면서 복지정책이 재정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워 갈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건전재정의 준칙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는 매년 세입세출예산의 수지균형원칙(관리재정수지 기준)을 지키도록 제도화하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경우에는 GDP의 3% 범위 안에서 투자예산을 별도로 편성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현재 영국의 재정준칙상 황금률과 같은 것이고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원칙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국회는 대통령 5년 임기 동안의 국가부채 증가한도를 설정해 지키도록 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발생한 재정적자를 임기 동안 최대한 축소할 의무를 부여한다. 이것은 미국 예산통제법상의 국가부채한도를 정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5개년 재정운영계획을 국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형식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셋째, 정부는 한번 도입하면 재정지출이 의무화돼 재정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는 예산사업을 도입할 경우 ‘페이고(PAYGO·번 만큼 쓴다) 원칙’을 도입해 사업비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 수단을 강구토록 한다. 넷째, 정부예산과 별도로 운영하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과 공공관리기금의 부채한도도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해 앞으로 발생할 국가부채 증가 요인도 국회가 사전 통제토록 한다. 다섯째, 이명박 정부 때처럼 국영기업이 국가 부채를 늘리는 편법에 동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기업의 부채한도를 국회가 설정해 감시토록 한다.

이상과 같은 재정준칙을 내년 상반기까지 국회가 마련하면 박근혜 정부는 집권 3년차인 2015년도 국가예산을 비롯한 공공재정을 건실하게 운영할 분명한 좌표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큰 틀 속에서 행정부와 국회는 매년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게 될 것이고, 국민도 앞으로 선거 때만 되면 재발할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글로벌 경제에 위기상황이 오면 즉각적인 영향권 안에 들게 된다는 사실을 15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두 번의 위기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튼튼해 극복할 수 있었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일은 경제성장, 복지확대와 더불어 한국 경제 운영의 3대 기본 축이라고 할 것이다.

강봉균 < 건전재정포럼 대표·前 재경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