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
5시간30분의 대장정이었다. 오후 4시에 막이 오른 공연은 9시30분이 돼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끝났다.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국내 초연된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이야기다. 이 공연은 초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1, 3, 5일 세 차례 공연 모두 매진됐다.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으로 ‘성배(聖杯)’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성창(聖槍)’을 소재로 했다. ‘구원자’로 지목된 파르지팔이 악한 마법사에게 빼앗긴 창을 되찾고 성배의 수호자가 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그렸다.

‘한나절’ 동안 진행된 이 오페라를 이끌어간 것은 단연 성배를 수호하는 기사 구르네만즈 역의 연광철(베이스)이었다. 2막을 제외한 모든 장면마다 무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독일의 바그너 음악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2008년부터 5년간 구르네만즈 역을 소화한 그는 또렷한 발음과 기품 있는 움직임으로 파르지팔의 성공적 초연을 이끌었다.

파르지팔 역의 영국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바보 같은 순수한 모습에서 성배의 수호자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마법에 걸려 파르지팔을 유혹하는 미녀 쿤드리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본 네프는 풍부한 성량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바리톤 김동섭과 양준모도 각각 암포르타스왕과 악한 마법사 클링조르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무대 뒤편에 사선으로 설치한 가로 15.5m, 세로 12.5m 크기의 대형 거울을 활용해 관객들이 체감하는 무대의 크기를 몇 배 크게 만들어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2막에서 꽃처녀들이 단체로 나오는 장면은 거울을 통해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냈다. 3막에서도 거울 덕분에 무대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와 핏빛 돌로 표현된 성배, 기사단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로타 차그로섹이 이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도 안정적인 연주로 극을 뒷받침했다. 1시간35분에 이르는 1막은 구르네만즈가 극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이 부분이 별다른 연출 없이 순전히 설명만으로 진행돼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쉬웠다.

1막이 끝나고 저녁 시간을 겸해 1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삼삼오오 흩어져 야외 광장에서 간단한 음식과 생맥주로 여유를 즐기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파르지팔 공연을 계기로 2015년부터 4년간 차례대로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바그너의 대표작 ‘반지’ 4부작을 공연할 계획. ‘파르지팔’에서 보여준 이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히 ‘반지’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