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삼성자산운용 코어주식운용팀장
김경훈 삼성자산운용 코어주식운용팀장
"이익 증가가 없으면 주가가 아무리 싸도 들어가지 않는 게 제 투자 원칙입니다."

김경훈 삼성자산운용 코어주식운용팀장(사진)이 운용하는 삼성자산운용의 '삼성투모로우' 펀드는 숨겨진 진주다. 설정액이 90억 원에 불과해 보통 100억원 이상의 펀드만 집계되는 수익률 순위에 잘 잡히지 않지만 성적은 인기 펀드 못지 않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7월2일 기준 3년 수익률이 25%로 전체 주식형펀드 수익률 상위 6%에 들 정도로 좋은 성과를 냈다.

◆ 하락장에서 방어력 높아

이 펀드가 돋보이는 것은 누적수익률뿐 아니라 1년 수익률로도 상승장과 하락장을 가리지 않고 매년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약세장인 2011년 코스피지수가 10% 이상 하락하는 동안 이 펀드는 -2.22%의 수익률로 원금을 거의 지켜냈다. 올해 코스피가 8.66% 떨어졌지만 펀드수익률은 -3.88%로 선방하고 있다. 방어력이 튼튼하다는 얘기다.

비결이 무엇일까. 삼성투모로우펀드의 포트폴리오(4월 초 기준)를 살펴보면 한국전력, 동서, LG유플러스 등의 종목이 시가총액과 관계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종목은 최근 주가가 재평가되며 상승하고 있지만 그동안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김 팀장이 이들 종목을 편입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다.

"동서 같은 경우 3년간 이익이 제자리여서 크게 관심 가진 종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최근 원재료인 커피원두와 설탕 가격이 급락하면서 수익성이 좋아졌죠. 카누 등의 신제품이 성공하면서 성장성도 높아졌고요."

동서 주가는 지난해 말 1만8000원 대에서 올 5월 3만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보다 70% 이상 상승한 LG유플러스도 시장에서 외면당하던 통신주다. 그는 롱텀에볼루션(LTE) 시대가 열리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2~3년 장기적인 이익 성장이 기대된다고 보고 이 주식을 사들여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종목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로 생각하는 것은 '성장'입니다. 무조건 싸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종목 가운데 싼 것을 고릅니다."

성장하는 기업을 알아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김 팀장은 현장을 꾸준히 다녀보면 하루하루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 변화가 모여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그것을 미리 포착해 투자에 적용하는 게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금호석유로 1500% 수익률 올려

지금도 그의 기억에 남는 종목으로 금호석유가 있다. 김 팀장은 2010년 금호석유에 투자해 20배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2009년 말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재계 20위권 순위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투자자들은 앞다퉈 금호그룹 계열사 주식을 팔아치웠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금호석유 주가도 두달 만에 반토막이 났다.

당시 김 팀장은 금호석유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 출장이 계기가 됐다. 중국의 자동차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타이어 판매도 급증했다. 김 팀장은 중국 현지 자동차 딜러들을 여러명 만나 인터뷰를 하며 현장 분위기도 체크했다. 그러던 도중 금호그룹 사태가 터진 것.

"금호석유 담당자들도 여러번 보고 주채권 은행이던 산업은행 관계자들도 만났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자금 지원만 되면 금호석유 자체가 망할 수가 없는 회사라는 겁니다. 연간 1000억 원 이상씩 현금이 나오는 회사였고, 부채는 많았지만 자금조달 능력이 충분했어요."

그는 리스크는 적고 주가는 역사상 볼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 금호석유를 공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자산운용은 금호석유 전체의 5% 이상까지 보유 지분을 늘렸다. 김 팀장이 금호석유를 매수한 가격은 1만5000원 대. 이후 그는 24만 원대에 주식을 팔았다. 수익률로 따지면 1500%.

상승하는 주식을 고르는 것 만큼이나 팔고 나오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상승장에서 따라가더라도 하락장에서 방어하지 못하면 도루묵이 되기 때문.

김 팀장은 "투자 기간은 2~3년으로 길게 잡고 있지만 기업의 성장 변화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매도한다" 며 "매도 타이밍이 빠른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별 종목과 기업가치에 집중하지, 거시경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거시경제 이슈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루에 환율 10원 오르고 떨어지는 데 신경쓰다 보면 투자판단에 어려움이 많아요. 원·달러 환율이 900원이 되더라도 잘할 수 있는 회사를 고르면 됩니다. 이런 회사들은 환율이 1300원으로 오르면 더욱 더 잘하겠죠."

그러다보니 힘든 시기도 있었다. 지난해 초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에 힘입어 조선·건설·자동차·화학 등 경기 민감주들이 일제히 오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김 팀장은 포트폴리오에 이들 종목을 넣지 않았었다.

시장이 15% 오르는 동안 그의 펀드는 7%밖에 안 올랐다. 영업지점과 투자자들의 항의가 하도 많아 당시 설명회도 여러 번 돌기도 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현재 주식이 오르는 것은 '유동성'이지 '기업 이슈'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거시경제 흐름이 기업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는 시점이 되면 매수하겠지만, 돈이 어디로 흐를지 예단하는 것은 도박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업종 전반적으로 보기보단 개별 종목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을 선호한다.

"시장에는 언제나 살 종목이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얼마나 잘 포착하느냐, 변화에 따라 수혜를 보는 회사를 골라내느냐가 중요하죠."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