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국가부채의 에누리 없는 전모가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제시한 ‘공공부문 부채 작성지침’에 따라 산출된 한국의 국가부채는 1043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앙정부·지자체 등 일반정부 부채 468조6000억원에다 그동안 국가부채로 간주하지 않던 공기업 부채 574조8000억원(통안증권 169조원 포함)을 더한 금액이다. 별도 부기항목인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436조9000억원)와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공채(108조1000억원)까지 감안하면 최대 1588조4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장래에는 이 모든 것이 국가부채로 인식될 전망이기에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30%대인 정부부채비율만 내놓고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왔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정부부채를 각각 100조원씩이나 늘린 근거였다. 하지만 새 통계기준에 따른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75.2%로 껑충 뛴다. 별도 부기항목까지 합친 광의의 국가부채비율은 115%로,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100%선을 훌쩍 뛰어넘는다. 국가사업에 동원된 공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빚을 내고, 구멍난 공무원·군인연금을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끌고온 탓이다.

나랏빚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데 감춘다고 줄어들 까닭이 없다. 쉬쉬해온 국가부채의 민낯을 드러낸 것만 해도 진일보한 일이다. 국가부채의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제시된 마당이기에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전부터 “국민이 나중에 갚을 빚이 실제 얼마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임기 첫해부터 대규모 적자예산을 짜면서 복지공약은 전부 지키겠다고 하니 무슨 수로 빚을 줄일 생각인지 알 수 없다.

빚을 못 갚으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할 텐데 저성장과 고령화로 세수 부진이 고착화될 판이다. 그럼에도 뭐든지 빚 내서 하면 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정치인들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은 외환위기의 주홍글씨가 지워지지 않은 나라다. “세계 다른 지역은 술을 깨고 있지만 아시아는 부채를 폭음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경고가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