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소위 모피아(옛 재무부(MOF)+마피아) 출신 인사들이 나란히 내정됐다고 한다. 정부지분이 전혀 없는 BS금융지주에는 금융감독 당국이 회장 사퇴를 종용해 관치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모피아 출신 모 인사가 간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금융관련 협회장 자리는 모피아의 전유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부 국토부 교육부 복지부 등 부처마다 산하기관·공기업의 감투는 퇴직관료들의 노후보장용이 된 지 오래다. 금융회사 감사에는 ‘감피아’라는 감사원 출신들이 속속 입성 중이다. 심지어 경총, 무역협회 같은 경제단체장마저 관료 출신들이 꿰찼다.

이쯤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관료공화국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내정된 인사들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관료 출신 몇몇이 어떤 자리로 가는 것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법치와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관료를 거쳐야만 문제가 풀리는 구조라는 얘기다. 관료가 법규 해석, 인허가 등을 독점하며 엄청난 자의적 권력과 재량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되레 민간에서 먼저 ‘힘있는 전관’이 와달라고 요청하는 웃지 못할 행태가 만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국가에서 관료제는 국가제도의 합리성을 담보하고,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수단이다. 주인(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이자 공복(公僕)이 바로 관료다. 노무현 대통령 때나, 이명박 대통령 때나, 박근혜 대통령 때나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하는 존재다. 관료는 영혼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공복이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라를 온통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판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에게 공무원이 되길 바라고,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100 대 1에 달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민간에 대한 관료의 규제와 처벌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관료의 재량적 권한이 커질수록 관치는 노골화되고 전관들이 갈 자리는 그에 비례해 늘어날 것이다. 반면 민간의 관료체제 진입은 언감생심이다.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나라가 돼가는 것은 국가시스템의 명백한 퇴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