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와 수입차 간 가격 인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엔저(円低)로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 수입차 업체들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올 7월 한·유럽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유럽차의 관세 추가 인하분이 적용돼 신차 가격이 낮아질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 업체들도 상품성 개선 모델의 가격 조정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엔저를 등에 업은 한국도요타는 가격 할인으로 지난달 1316대를 출고하는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달에도 할인 프로모션을 지속하면서 캠리는 최대 400만원, 스포츠카 86과 CUV(크로스오버 차종) 벤자는 700만원씩 깎아준다.

일본에서 생산돼 국내 들여오는 렉서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올 1~4월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했다. 이달 본격 출고하는 신형 IS 250은 종전보다 10만원 낮췄다. 풀 체인지 모델의 가격이 내려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역시 G25 세단의 소비자 가격을 4340만원에서 3770만원으로 570만원 낮췄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지난해 인피니티는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하며 2016년까지 글로벌 판매량을 50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며 "이번 가격 인하는 이러한 브랜드 확장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수입차 가격인하 공습···자동차 新트렌드 '몸값 낮춰라'
다음달부터 유럽차의 경우 배기량 1500cc 이상 모델의 관세는 종전 3.2%에서 1.6%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차들도 가격을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커졌다. 벤츠코리아가 이달 말 출시하는 E클래스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는 FTA 관세 인하분을 선적용하기로 했다.

올 여름 출시를 앞둔 BMW의 신형 5시리즈와 폭스바겐 신형 골프도 가격 인하분을 감안해 차값을 책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차 업체 관계자는 "기존 고객이 누리던 가격이 있기 때문에 신차의 옵션이 보강되더라도 고객 중심의 가격 정책을 가져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수입차의 가격 할인 공세에 맞서 국산차의 차값 인하도 뒤따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상반기 내놓은 투싼ix, 쏘렌토R, K9, K5 하이브리드 등 연식 변경 모델의 가격 인상을 줄이거나 일부 트림은 몸값을 낮췄다. 경기 불황에 내수 부진이 이어지자 차값 할인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2014년형 쏘렌토R은 주력 트림인 리미티드를 '프레스티지'로 바꾸면서 170만원을 인하했다. 현재 사전계약을 받고 있는 K5 부분변경 모델의 가격은 최대 55만원(터보) 낮췄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엔트리(저가형) 모델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인조가죽 시트 등 일부 품목을 기본 적용하면서도 가격 인상분은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전에는 연식이 바뀔 때마다 가격 인상은 철칙이었다. 최근 들어선 트림 조정을 통해 가격을 동결하거나 선호도가 낮은 사양을 빼고 가격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실속형 구매자가 늘어났다고 자체 분석한 결과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공세 강화로 국산 대표 메이커인 현대·기아차가 가격을 더 이상 인상할 여지가 사라졌다"며 "업계 1,2위인 현대차와 기아차가 가격을 내리면 르노삼성, 한국GM 등 후발 업체들도 사실상 가격을 올리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