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따른 기근에 북한 붕괴 가능성도"
물·식량·에너지문제 대두…일부 선진국 선제 대처

기획취재팀 = # 2020년 4월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한다.

몇 년째 이어진 기근이 원인이다.

북한 주민은 더는 중앙권력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저마다 살길을 찾아 나선다.

휴전선 인접 지역 주민은 걸어서 한국으로 넘어와 도움을 청한다.

한국은 북한의 가장 먼 지역까지 식량과 연료를 지원한다.

사회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탓에 북한 어느 지역에서도 식량을 재배할 수 없다.

남한 인구 5천만명은 굶어 죽다시피 하는 북한 주민 2천500만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국제 안보전문가이자 군사 지정학자인 귄 다이어가 저서 '기후대전(Climate Wars)'에서 북한의 붕괴를 가정한 시나리오다.

그의 저서에서 북한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내부 쿠데타도 외부와의 전쟁도 아닌 기후변화에 따른 기근이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환경의 영역을 넘어 정치, 경제, 군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 아래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해체되고 북극해는 영토분쟁으로 얼룩진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물자원 확보를 위한 핵전쟁을 벌이고 미국은 남미 각국에서 이주하는 기후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는다.

이런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공상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넘길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귄 다이어 예언'의 전조가 지구촌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중동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흥미로운 견해가 있다.

물론 독재정권의 탄압과 민주 시민의식 성장 등 정치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곡물 수급 불균형이 '아랍의 봄'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가뭄이 심했던 2011년 러시아 정부는 곡물 수출을 금지했다.

곡물가격은 급등했고 기근에 시달린 중동지역 국민의 폭발적인 불만에 독재정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마찬가지로 식량문제가 심각한 북한의 붕괴가 다름 아닌 기후변화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는 귄 다이어의 시나리오가 마냥 허황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반도 역시 기후변화와 안보의 상관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 속에 엄청난 자연재해를 맞으면서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을 맞았던 것도 안보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조천호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장은 "한반도의 경우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이 기후변화 영향으로 국가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구 1억6천만명이 넘는 방글라데시에서는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로 육지가 바다나 강으로 휩쓸려가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침수 피해로 생활터전을 잃은 방글라데시 일부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 인도 북동부로 이주함에 따라 양국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나 인도양의 몰디브가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기후안보 국제회의'에 참석차 방한한 파카소아 틸레이 투발루 외무부 사무국장은 기후변화와 안보의 관점에서 섬 상황을 설명했다.

틸레이 사무국장은 "아주 작은 도서국가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은 책에서 보는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피부로 경험하는 실질적인 문제"라며 "현재 뉴질랜드 외에 마땅한 피난처가 없어 섬이 없어지면 이주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안보 국제회의 참석자들은 물, 식량, 에너지 문제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타야 뿌까만 태국 천연자연환경부 차관은 "아태지역은 기후안보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다"며 "주요 농산물 생산국들은 기후변화를 극복해 농업생산성을 높여야만 식량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판카르 타룩다르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주(洲) 국무장관도 "홍수, 강물의 범람으로 많은 이주민이 발생해 식량안보뿐 아니라 강제이주를 둘러싼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강제이주를 해결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후 엑서더스'가 미래 갈등 요인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도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안보 간 관계' 보고서를 통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올 기후변화로 예견된 것보다 더 힘든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선진 부국들이 기후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지 못하면 빈민 유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선진국은 기후변화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영국은 그 가운데 선도적인 국가다.

이를 위해 영국은 2008년 10월 내각 개편을 통해 환경부가 관할하던 기후변화 업무와 기업부에서 맡던 에너지 업무를 총괄하는 에너지기후변화부를 만들었다.

또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적인 공조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후에너지안보대사직을 신설했다.

제임스 휴즈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부국장은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명분도 점점 뚜렷해짐에 따라 새로운 부처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닐 모리세티 영국 기후변화특사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안보 위협이 그동안 국가 안보와 관련해 제기됐던 전통적 위협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기후변화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전략적 위험 요소들이 어떤 것인지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리세티 기후변화특사는 "궁극적으로 기후변화가 국가 안보, 경제·인권·지역갈등 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을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예방 차원에서 잘 살펴야 한다"며 "한국도 북한의 식량, 에너지 부족 문제가 한국 정부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런던=연합뉴스)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