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병원들이 공동으로 해외 의료시장 개척에 나섰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가천길병원 원자력병원 등 5개 대형병원이 컨소시엄을 구성, 사우디아라비아에 의료기술 수출과 의료시설 건립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병원 시스템의 수출이다. 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료수출협회 보건산업진흥원 산업은행 등이 출자한 ‘코리아 메디컬 홀딩스’라는 회사도 설립됐다. 성공한다면 건설, 원전에 이은 시스템 수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시스템 수출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그래서 백미로 꼽히는 게 바로 병원이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진출도 한국 의료기술의 이전을 통해 로열티를 받고,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현지병원 관련시설까지 건립하는 종합 프로젝트다. 선진국에서 병원이 새로운 수출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일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해외 의료사업이 경기를 타지 않는 안정적 수익 원천이라며 의료부문 사업 강화에 팔을 걷어붙인 양상이다. 요미우리 보도에 따르면 미쓰이물산은 싱가포르 최대 병원 내에 간장질환 전문 클리닉을 열었고, 도요타통상은 보안업체인 세콤 등과 공동으로 인도에 종합병원을 개설했다. 이토추상사는 재해시 환자이송 및 치료 우선순위 시스템을 개발해 아시아 지역 각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판매 중이다.

우리 정부도 병원 수출의 가치를 알고는 있는 모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어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병원 등 시스템 수출상품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그런 시스템 상품 개발을 상징하는 투자병원을 설립하고 싶어도 규제에 막혀 못한다. 수년간의 논란 끝에 겨우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게 전부다. 그것조차도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채 정부가 병원 수출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태국의 투자병원인 붐룽랏 병원은 한 해 의료관광객만 40만명을 끌어들인다. 수익사업 진출도 자유롭다. 태국도 사우디도 하는 걸 한국에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