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테한 세계여행 (7)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진정한 배낭여행자로 거듭나는 중
[정민아 / 사진 오재철] 우리도 이제 장기 배낭여행자로서의 태가 좀 나는 것 같다.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도 검게 그을렸고, 빳빳하고 깨끗하던 배낭 군데 군데에 더러운 얼룩들도 생겼다. 또한 장기 배낭여행자라야 알 수 있는 유용한 여행 팁들도 하나 둘씩 쌓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교통비와 숙박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야간버스 이용하기’이다. (다만 이 방법은 도시 간 이동 시간이 적어도 6시간 이상일 때 유용하며 국경을 넘어야 하는 경우엔 위험할 수도 있을 듯)

우린 장기 배낭여행자답게(?)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 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이 방법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감성 충만한 늦은 밤에 떠나는 도시는 더욱 안타깝고 애틋하게 느껴지고, 상쾌한 새벽 공기 맞으며 도착하는 새로운 도시는 언제나 활기차게 느껴진다는 점에 있다.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
[나테한 세계여행 (7)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진정한 배낭여행자로 거듭나는 중
그러나 기분은 기분일 뿐, 부랴부랴 떠나오느라 미처 숙소 예약을 못한 탓에 우리는 산 크리스토발의 버스터미널에서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그 때 때마침 지나가던 일명 ‘삐끼’가 우리에게로 슬쩍 다가와 샤워실이 포함된 2인실 방을 매우 싼 가격에 제시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호스텔로 향하긴 했지만, 여행 정보 사이트나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삐끼 따라 가보니 그 가격이 아니더라”라는 글들을 많이 봤었기에 호스텔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의심의 눈초리를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방은 제시했던 가격 그대로였지만, 눅눅하고 습기찬 방, 얼룩진 침대 시트, 개미, 모기, 바퀴벌레가 사이 좋게 기어다니는 방, 빈대 없으면 다행일 것 같은 그런 방이었다. “병 걸릴 것 같은 이 곳에서 지내도 되나?”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는 사이 주인은 인심 좋게 아침 식사부터 하라며 부엌으로 안내했다. 먼저 아침을 먹고 있는 여행자들 사이에 끼어 빵을 한 입 베어 문 채 고개를 돌려 물었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Where are you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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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신상 정보를 주고 받은 후 “How long have you been traveling?”이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대답들이 터져 나온다.

“우리 커플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3년이 넘게 여행하고 있어.”,
“우린 여행지에서 만나 2년 째 함께 여행 중이야.”,
“우린 가족이 다 함께 여행 중이야. 각자 의견들이 많아서 가끔씩 싸우지만 함께라서 즐거워”

‘깨갱!’ 한국 떠난 지 이제 한 달 남짓. 조금 전까지 장기 배낭여행자 태가 난다며 히히덕거리며 의기양양했던 우리는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얌전히 베테랑 여행자들의 여행담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여행지 중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벨리즈’라는 작은 나라에 유독 관심이 갔다. 가오리, 상어, 바다거북이 등과 함께 수영할 수 있는 꿈의 섬이란다. “아하, 이런 게 여행하는 맛이지!” 우린 계획에 없던 ‘벨리즈’라는 나라를 들리기 위해 수첩 한 켠에 메모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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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베테랑 여행자들 틈에 끼어 아침을 먹고선 병 걸릴 것 같은 호스텔을 급하게 빠져 나왔다. 퀴퀴하고 습한 호스텔 방과 대조되어서였을까? 산 크리스토발의 아침 공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상쾌했다.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알록달록 칠해진 양 옆의 건물들이 조화로웠으며, 이 골목 저 골목 싸고 예쁜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산 크리스토발은 세계 배낭여행자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어딘가 참 익숙하고 정겹다 싶어 한참을 살펴보니, 산 크리스토발의 건물들은 우리나라처럼 처마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기와집들에 알록달록한 페인트를 칠해놓은 느낌이랄까. 우리는 전망대에 올라 익숙한 듯, 또 색다른 산 크리스토발의 전경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테한 세계여행 (7)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진정한 배낭여행자로 거듭나는 중
여행을 하다 보면 문득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디아와 테츠)가 오랫동안 일하던 직장을 때려 치고, 집 팔고, 차 팔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1년 간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었다. “미쳤냐”며, 가끔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 주변에서 세계 여행 가는 사람은 너희가 처음’이라며 놀랐고, 그 다음으로 묻는 말은 ‘갔다와서 뭐 먹고 살래?’였다.

그러나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 같은 여행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 곁에서 못만났다고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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