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페니키아인들의 항해술은 아프리카를 일주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들은 태양과 달, 별들의 움직임을 보고 방향을 알아내는 데 정통했다. 아시아와 유럽의 어원인 아수(Asu·일출)와 에렙(Ereb·일몰)도 페니키아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페니키아인들은 구체적인 위치를 과학적으로 계산해내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항법의 역사는 나침반이 발명된 이후 시작됐다. 자석 바늘을 물위에 띄우면 끝이 북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중국인들이 이미 11세기에 알아냈다. 나침반이 서구에 전래되면서 항해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마젤란의 항해와 콜럼버스의 신대륙에 대한 도전도 나침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확한 항해지도는 18세기 영국의 시계공 존 해리슨이 경도를 알 수 있는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다음에 만들어졌다.

20세기 들어 하늘길이 열리면서 항공 항법이 개발된다. 처음엔 항공 항법도 육안이나 천문에 의존하다가 무선 레이더 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해갔다. 하지만 전쟁이 항공전으로 변화해 가면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항법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에선 목표물에 수천개의 폭탄을 쏟아붓는 게 다반사였다. 인공위성을 사용해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위성항법장치(GPS·global positioning system)가 만들어진 것은 이런 군사적인 이유에서였다. GPS는 원래 미 국방부에 의해 24개 위성으로 짜여진 항법 시스템을 일컫는다. 6개의 우주궤도에 위성이 각각 4개씩 배치되어 하루에 지구를 두 번 따라돌게 된다. 따라서 지구상 어느 위치에서건 적어도 4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게되는 구조다.

이렇게 군사용으로 개발되고 활용되었던 GPS가 승용차 내비게이션이나 항공기 위성항법장치 등 민간 기기에 쓰이게 된 것은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 사건으로 인해서였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는 사할린 상공으로 들어갔다가 옛 소련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돼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을 보고 받은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군사용으로만 쓰던 GPS 신호를 민간에서도 허용토록 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 후 GPS 시장은 100조원이 훨씬 넘는 규모로 급성장해 왔다.

중국이 독자 개발한 GPS ‘베이더우(北斗)’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 베이더우 1호기 발사를 시작으로 현재 16기의 위성을 발사한 상태다. 2020년까지 모두 35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서비스 지역을 전 세계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도 서비스 지역 안에 들어 있다. 미국과 중국 간 GPS 전쟁이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