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약혼과 세 번의 파혼. ‘변신’으로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내면적 고뇌와 사랑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세 번의 파혼은 그의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작가의 길에 대한 번민의 산물이다. 그가 결혼에 대한 욕구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안정된 가정을 원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와 각지를 유력하던 그였던지라 그런 바람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대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계 보험회사에서 일했는데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이라 집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직장생활은 그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8개월 만에 그만둔 뒤 좀 더 근무 조건이 나은 국영 보험회사로 옮겨 오후 시간에는 집필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착잡한 현실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사창가를 들락거렸다.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막스 브로트의 증언에 의하면 카프카는 끊임없이 여성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성도착자였다고 한다.

정신적 노마드인 카프카에게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된 여인은 펠리체 바우어(1887~1960)였다. 축음기 회사 간부인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12년 8월 친구 브로트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였다. 바우어는 브로트 매제와 사촌지간으로 부다페스트로 가던 중 프라하에 들렀다. 카프카는 처음 본 그에게서 아무런 호감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우어의 옆자리에 앉는 순간 카프카는 은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의 포로가 되고 만다.

카프카는 만남 직후 거의 매일 바우어에게 편지를 썼다. 카프카가 바우어에게 얼마나 빠져 있었는지는 그를 모델로 쓴 단편소설 ‘심판’에서 잘 드러난다. 카프카는 바우어에게 청혼했고 이듬해 약혼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불과 몇 주 뒤 파혼을 선언했다. 카프카는 결혼이 가져올 작가로서의 평화를 깨게 될까봐 고민했고 그런 신경증은 그로 하여금 혼약을 번복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 후 두 사람은 1917년 7월 두 번째로 약혼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핵 진단을 받은 것이다. 1920년에는 호텔에서 룸서비스 일을 하고 있던 줄리 보리첵과 약혼 후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역시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카프카는 또 다른 여인과 만났다. 정신적 교류가 없는 관계에서 오는 공허감을 그는 또 다른 공허한 관계 속에서 메우려 했다. 1920년에는 체코의 저널리스트인 밀레나 예센스카와 잠시 열애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운명의 여인을 만난 것은 1923년 7월 발트해안의 뮈리츠에서 였다. 그곳에서 요양하며 다소 원기를 회복한 카프카는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웠고 그런 희망의 불을 댕겨 준 것은 유대인 어린이요양소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던 폴란드 여성 도라 디아만트(1898~1952)였다. 카프카는 15세 연하의 이 매력적인 흑발 여인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도라 역시 매일 요양소를 찾아 아이들과 다정다감하게 대화를 나누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체코 작가에 매혹되고 만다. 둘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맺어졌다.

베를린의 변두리 싸구려 셋집에서 남폿불을 켜고 살았지만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카프카는 러시아 문화의 영향 속에서 자란 디아만트에게 괴테의 소설과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어줬다. 밤이면 집필에 몰두했는데 밤새도록 침묵이 흘렀지만 디아만트는 그런 카프카의 모습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원고를 마친 카프카가 침묵을 깨고 자신의 원고를 들려줄 때 디아만트는 행복의 극치를 맛봤다. 옹색하고 좁아터졌지만 그 공간은 카프카가 여지껏 경험해본 중 가장 행복한 곳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1924년 2월 카프카의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돼 요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됐다. 디아만트는 감염의 위험을 마다 않고 요양원을 따라다니며 카프카를 보살폈다. 빈 외곽의 싸구려 요양원이었지만 카프카는 디아만트가 있어 안도할 수 있었다. 디아만트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결핵균은 후두에까지 번져 카프카는 더 이상 디아만트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로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필담으로 나눈 마지막 나날들의 사랑은 말로 나눈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애틋함으로 흘러넘쳤다. 카프카는 6월3일 디아만트의 품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햇살을 봤다.

카프카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자신의 자화상 같은 소설을 남겼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라는 세일즈맨의 좌절과 최후를 그린 ‘변신’이라는 작품이었다. 카프카는 죽음과 함께 그레고르처럼 변신했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 회환을 품고 최후를 맞이한 데 비해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천국의 문을 노크했다. 그것은 디아만트와의 짧은 사랑이 가져다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