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도 막을 내린 추운 겨울, 뜨내기 노동자 영달은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다 교도소에서 나온 정씨를 만난다. 둘은 공사판을 오고가며 안면을 익힌 사이. 갈 곳 몰라 하는 영달과 달리 정씨는 고향으로 가던 길이다. 그 순간 영달은 깨닫는다.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영달이는 또 다른 곳으로 달아나는 길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발표된 황석영의 명 단편 《삼포 가는 길》이 막 불어오기 시작한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삼포 가는 길’의 시대만 하더라도 고향이 있다는 것,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팍팍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물론 우리는 조만간 정씨의 고향도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씨는 삼포를 ‘비옥한 땅은 얼마든지 남아돌아가고 마음껏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섬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모습을 드러내는 삼포는 그가 기억하던 그곳이 아니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던 삼포는 이제 어엿한 육지가 됐다. 바다에는 제방이 쌓이고 신작로가 만들어졌으며 관광호텔이 들어서느라 트럭이 수도 없이 들락거리는 번잡한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뜨내기 공사판을 찾아 전전하는 신세일 망정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영달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자부하던 정씨가 비로소 자신 역시 영달과 같은 신세가 됐음을 깨닫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그도 영달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포 가는 길’의 문제의식을 이제는 낡은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향 따위는 개나 주라고 냉소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의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는 고향을 떠나는 순간 획득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대가가 얼마나 혹독했었는지 기억할 필요는 있다.

고향은 다만 그것의 있음, 그 존재만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나의 과거가, 나의 뿌리가 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에 다름 아니다. 나는 고향과 더불어 어떤 누구도 아닌 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를 상실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내밀한 사랑, 상처, 기쁨 등은 모두 고향의 기억에서 연원한다. 이런 근원적인 기억을 상실하면 사람들 각자의 삶에 내재된 개별성의 흔적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똑같은 사람이 된다. 비옥한 논밭 사이를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 자맥질 한 번만으로도 온 식구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건져 올리던 바다의 풍요로움, 이 모든 기억들은 고향이 사라진다면, 영원히 다시 보고, 느끼기 힘들 것이다.

‘삼포 가는 길’로부터 어느덧 삼십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사정은 더 악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국토의 젖줄을 휩쓸고 간 지금, 우리는 다시 황석영 소설의 주인공 영달이나 정씨의 처지가 되어 버렸다. 도처에 불도저의 굉음 소리가 난무하고 대지는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공기 속에 방치돼 버린 상태다. 고향에 가도 고향은 없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적어도 역사로부터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삼십 년도 더 전에 이미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오류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다시 추석은 찾아오고 우리는 여전히 ‘고향 가는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 길은 ‘삼포 가는 길’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우리는 과연 ‘고향’에 다다를 수나 있을까. ‘고향 가는 길’의 끝에서 다시는 정씨와 같은 낙담과 회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교수 ssjjj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