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일본 전지훈련에서 왼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펴지지 않을 정도이고, 왼쪽 팔꿈치도 다쳤다. 얼마 전 왼쪽 무릎까지 파열돼 제대로 걷기도 어렵다. 왼쪽 어깨마저 습관성 탈골로 당장 수술해야 하는 상태다. 그런데도 경기에만 나서면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이번에 강자들을 차례로 누를 때도 시청자들은 부상의 기미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투지가 고통을 압도한 것이다.

선수들의 메달을 향한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체력과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몇 년씩 극한 훈련을 소화해 내며, 담력을 키우려고 운동복에 뱀을 넣고 훈련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시카고의 내과의사 밥 골드만이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던 육상 수영 역도선수 1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세계 정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약물 복용도 불사하겠다’고 대답한 선수가 195명에 달했다. 또 반 이상이 ‘부작용으로 5년 뒤 죽는다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약물을 복용하겠다’고 응답했다.

흥미로운 건 심리적 만족도에서 동메달이 은메달을 앞선다는 점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TV로 중계된 선수들의 표정을 통해 감정상태를 살펴봤더니 경기 종료와 함께 은메달이 확정된 선수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8점인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7.1점이나 됐다. 시상식에서도 동메달 만족도는 5.7점으로 은메달의 4.3점에 비해 높게 나왔다.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금메달이 만족의 기준이 되지만 동메달리스트에게는 노 메달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란다. 메달에도 미묘한 심리 메커니즘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1초 오심’으로 결승 진출이 좌절된 신아람 선수에게 ‘공동 은메달 수여’를 추진하는 방안이 거론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국제펜싱연맹(FIE)의 동의를 얻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동 은메달을 달라고 요청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거다. 오심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대한체육회가 이를 만회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내놨다고 한다. 하지만 FIE가 동의한다면 판정 번복이라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번지는 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고, 자칫 ‘떼쓰기’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메달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과 꿈이 고스란히 담긴 결정체다. 신아람 선수는 터무니 없는 오심으로 큰 상처를 받았지만 세계 스포츠 팬들의 위로와 격려로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는 중이다. 정면대응이 아니라 공동 은메달 같은 편법을 섣불리 쓰다가는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