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다. 앞으로 더 심할 것이다. 농어촌 도서벽지 군부대 교도소 소방본부 등 의료 취약지역에는 의사가 줄어 외국 의사를 수입해야 할 지경이다.

의사 수를 늘려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헌법학적으로 보자. 의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는 마지막 지지선이다. 국가가 적정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할 의무를 지도록 한 이유도 여기있다. 의사 대비 몇 명의 인구가 적정한지에 대한 논의는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는 너무 형식논리적이다.

의사 수는 단순히 인구 대비로 논해서는 안된다. 산골이나 섬, 전방 군부대의 감시초소에는 수십명 밖에 안 살더라도 만성질환 관리가 필요한 고령환자, 독거노인 등이 있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의사를 배치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취약지역에 군복무를 대신해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근무시켜왔다. 그러나 의대생 중 군 전역자와 여성이 늘면서 이 제도에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의관으로 근무할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보의로 배치할 여력은 더 없어졌다.

이런 불균형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생활 여건이 좋은 대도시를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중소도시나 농어촌에선 비싼 임금을 지불하고도 의사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전국 16개 광역 시·도 중 의과대학이 하나도 없는 곳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섬이나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동일한 인구라도 도시에 비해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일본의 방위의대나 자치의대처럼 국가 차원에서 매년 1000여명 이상을 양성하는 교육제도를 만들어 군병원, 보건소, 지방의료원에 의무복무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보건경제학적으로 보자. 1970년대 감기몸살로 동네의원에서 주사 한대 맞고 3일치 약을 받으면 외래진료비가 대략 5000원 정도였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 100원 정도였으니 외래진료비가 짜장면 50그릇 값에 달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990년대부터 병원 문턱은 많이 낮아졌고 최근에는 외래진료비가 짜장면 5그릇 값으로 줄어들었다. 이 사례는 의사가 부족할 때 우리사회가 겪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의사 몇 명이 적당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는 마치 동네식당이 몇 개가 적당한가라는 질문과 똑같다. 차이점은 의사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이라는 인위적인 진입장벽을 통해 독점 상태인 반면 동네식당은 누구나 운영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독점은 대체로 비싼 가격을 통해 독점이윤을 낳고 소비자에게는 그만큼 손해가 돌아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09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1.9명인데 비해 OECD 평균은 3.2명이다. 국제 기준으로 단순 비교하면 한국은 의사 수를 지금보다 50% 이상 늘려야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사 수에는 한의사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한국의 의사 수는 이보다 더 적다. 또 대학입시에서 의과대학의 인기도를 보면 의사가 얼마나 희소한 자원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의료 현장의 현실을 봐도 그렇다. 전국의 병원이 해마다 선발하는 전공의 숫자는 4000명 수준이다. 반면 공급되는 의사 수는 3000명가량에 불과해 매년 1000여명이 부족하다. 이렇다보니 해마다 일부 과목에서 기피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의료 이용량이 매년 경제성장률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의과대학 정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10%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의사 수 부족은 곧바로 병원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환자의 진료비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사단체는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오히려 의사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시장은 냉정하다. 시장에서 의사 부족이 연간 1000명이나 관찰되는 데도 의사 수가 많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근거는 수없이 많지만 ‘의사 과잉’이라는 근거는 의사단체의 일방적 주장 외에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된 적이 거의 없다.

면허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자격자에 의한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면허소지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면허제도는 자격제도이므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 면허를 발급하는 것이 맞지만 그 숫자를 과도하게 제한하면 소비자 피해가 막심하다. 과거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를 연간 50명 내외로 제한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적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 결국 합격자 수 제한을 폐지하고 일정 점수 이상 취득자를 합격시키는 제도로 개혁했다. 결과적으로 기업과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의사면허제도 역시 운용 원리가 다르지 않다. 의사 수 부족에서 오는 피해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크며 또한 장기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득 증가, 노령화, 첨단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의료 이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주 5일제 근무 등으로 의료 서비스의 공급 여력은 감소하는 추세여서 지금도 부족한 의사 수가 날이 갈수록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끝으로 질 저하와 비용 상승이 되는지 살펴보자. 의대 입학생 수를 50% 늘린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의료비도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이 단적인 예다. 지금도 로스쿨 입학은 어렵다. 그런데도 재학생의 질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법시험제도 아래서 연간 200명가량 배출되던 변호사가 로스쿨 등을 통해 올해 2500명 배출됐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변호사 비용이 낮아지면서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 의사는 임상뿐 아니라 보건정책, 식품위생관리,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저수지에 물이 넘치면 맨 아래쪽 논까지 물이 흘러가게 되지만 저수지 바닥이 보이면 원천적으로 해갈은 불가능하다. 의료인 양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6년 내지 10년이 소요된다. 기존 의대정원을 늘리고, 국방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 근무 의사를 양성하는 이원화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신현호 < 경실련 보건의료 정책위원 >

△고려대 법학과 △법률 사무소 해울 대표(의료 전문 변호사) △복지부 감염병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의료법학회 회장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