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미술시장은 ‘바닥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5년째 하락세를 이어온 그림 값이 해외 미술시장 활황에 힘입어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그림 값 약세는 유럽 경제위기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자산 디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투자 메리트가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유럽 위기가 악재로 작용했지만, 미국 영국 중국의 그림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림시장의 ‘큰손’이라할 수 있는 강남 아줌마의 매수세가 경매시장에서 지속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그림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만큼 매수해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그림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시세가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인기 작가 위주로 서서히 반등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경매시장에 1조4000억원 몰려

국제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올 상반기 실적이 호전됐다. 지난달 뉴욕 경매시장에는 에르바르트 뭉크, 파블로 피카소,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최고가 기록을 양산하며 13억달러(1조4000억원) 상당의 ‘뭉칫돈’이 몰렸다. 이는 양대 회사의 단일 경매 사상 최고 액수다.

크리스티는 지난달 1, 2일 뉴욕 인상파 작품 경매와 9, 10일 현대미술 경매에서 평균 낙찰률 87%를 기록하며 6억1600만달러(7000억원)어치의 작품을 팔아치웠다. 이는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11월 낙찰률(50.5%)보다 37%포인트 수직 상승한 것. 낙찰 총액도 당시 뉴욕 경매(4억1000만달러)보다 2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소더비도 지난달 2, 3일과 10일 경매에서 평균 낙찰률 81%를 기록하며 7억달러(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소더비 경매에서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Scream)’가 1억1992만달러(1354억원)에 낙찰되며 2010년 5월 1억640만달러에 팔린 피카소의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이 세운 최고가 기록을 2년 만에 깼다.

중국 미술시장도 활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중국 예술품시장의 전체 규모는 82억달러로 2000년 이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의 예술품 펀드와 투자신탁 시장 규모는 3억2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중국 예술품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최근 3~4년간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경매 시장도 봄바람 솔솔

국내 미술시장도 경기회복을 점칠 수 있는 경매 낙찰률 부문에서 미세한 해빙 무드가 감지되고 있다. 미술품 양대 경매 회사 서울옥션과 K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 낙찰률이 80%에 바짝 다가서며 시장 전망을 밝게 했다.

두 회사가 지난 3월20일과 21일 실시한 봄철 메이저 경매 낙찰총액은 132억원으로 지난해(96억원)보다 28% 늘었다.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외 근·현대미술 대가들의 출품작 122점 중 94점이 팔려 3년 만에 최고 수준인 낙찰률 77%(낙찰총액 52억원), K옥션 경매에서는 193점 중 151점이 팔려 낙찰률 78%(낙찰총액 79억5700만원)를 각각 기록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국내 미술 경기가 일단 바닥을 찍고 추세 전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박수근 김환기 등 근대 작가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조정열 K옥션 대표는 “미술품 투자자들이 짙은 관망세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싼 가격의 인기작가 작품에 응찰하는 것 같다”며 “국내외 컬렉터들의 입찰 참여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시장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서울 인사동과 청담동 등 화랑가에는 직장인과 주부 등 미술품 애호가들 사이에 그림 컬렉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투자 심리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아 100만~200만원대 소품에만 매기가 붙고 있다.

지난달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니프 소품에서는 100만원 출품작 188점 가운데 90% 이상 판매됐고, 관람객도 15일 동안 5000여명이 다녀갔다. 앞서 중견 화가들의 작품을 200만원 균일가에 판매한 서울 관훈동 노화랑의 ‘작은 그림 큰 마음’전에서도 출품된 100점이 1주일 만에 모두 팔려 모처럼 ‘훈풍’기류를 탔다.

이에 따라 미술품 경매회사들은 미술시장의 회복을 기대하며 여름 메이저 경매를 열어 고객잡기에 나선다. 서울옥션은 오는 27일 경매에 알렉산더 칼더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국내외 원로 중진 신진 작가들의 작품 170여점을 출품할 예정이다. K옥션은 20일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비롯해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국내외 최정상급 화가들의 명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럽 경제위기가 변수

전문가들은 국내 미술시장이 서서히 회복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지만 내년부터 시행하는 미술품 양도세 부과에 따른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약간씩 의견을 달리했다.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 미술 애호가 확대, 여수엑스포박람회 등의 호재와 미술품 양도세 부과,유럽 위기, 주식시장 불안, 부동산시장 위축 등의 악재가 뒤섞이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유럽 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9~10월께에는 ‘큰손’ 컬렉터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개미 컬렉터들도 미술품 구입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우려, 기업 구조조정, 내년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 등 여전히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당장 미술시장이 회복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세계 경제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어 연내 미술시장이 활기를 되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