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본지 11월18일자(A38면)로 ‘안철수는 링 위에 올라라’는 칼럼이 나간 직후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지자들이 전화와 이메일로 항의했다. 칼럼의 요지는 안 원장이 대선 후보로 나설 거면 비전을 보여주고 혹독한 검증을 거치라는 것이었다. ‘바람’에 의해 당선된다면 국민이 불행해진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지자들은 안 원장이 의사의 길을 접고 1988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기업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것 자체가 리더십과 능력을 증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삶 자체가 검증이다”

최근 만난 안 원장 측 인사들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 원장이 그동안 공(公)적인 삶을 살았고, 숱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검증받았다는 주장이다. 한 인사는 “정치권에 몸을 담아야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다는 것은 기존 정치인의 선입견”이라며 “벤처기업인으로서의 삶과 성공 자체가 검증”이라고 했다.

이들은 안 원장이 정치적 계산 아래 대선 출마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안 원장은 대선 후보로서 자격을 갖췄는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 그 자신도 출마 시기를 모를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지난달 30일 부산대 강연에서 출마 여부와 관련, “저를 통한 사회적 열망에 어긋나지 않을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모호하게 피해 나갔다.

대선 출마 여부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째,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까지 변죽만 울리다보니 ‘안철수 피로감’마저 나온다. ‘지지층을 붙잡되 검증은 피하기 위해’ 대선 출마 선언을 8월 말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석 달 만인 2003년 5월 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극단적 발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3월16일 “취임한 지 20일인데 6개월은 된 것 같다”고 했다. 한 핵심 측근은 “이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 등 굵직한 공약을 내놓으며 1년 반 동안 대선 준비를 했는데도 업무 수행이 만만치 않았다”며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자마자 사방이 적으로 변하더라”고 토로했다. 단임 대통령제 하에선 학습기간인 첫 1년과 레임덕으로 보내는 마지막 1년을 제외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집권 이후 정치 배워선 안돼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막강한 힘을 가진 입법부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고도의 정치 리더십은 필수 조건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의회와 갈등을 빚는 바람에 탄핵 상황을 맞이했고, 이 대통령도 초반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국정 운영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대통령은 선(善)으로만 할 수 없다. 월러 R 뉴웰 미국 칼튼대 교수는 저서 《대통령의 조건》에서 치열한 권력 투쟁을 위한 마키아벨리 같은 성향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복잡다단한 대통령의 조건을 놓고 혹독한 검증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대선을 불과 6개월 남은 시점에 대북 정책, 한·미 동맹, 경제발전 전략, 일자리 문제 등에 관한 안 원장의 총체적 국정 비전을 들어보지 못했다. 안 원장에게 대통령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하루 빨리 링위에 올라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에 대한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누가 되든 우리 국민들은 집권 이후에야 정치를 배우고 국정을 익히는 대통령을 맞는 불행을 겪어선 안 될 것이다.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