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깡촌의 아이들 70명이 유럽 순회공연 간다고 하면 다들 거짓말이래요. 하긴 제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니까요.”

경남 북서쪽 지리산 자락 함양군의 다볕청소년관악단이 유럽 순회공연에 나선다. 내달 18일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필하모닉홀을 시작으로 21일 오스트리아 빈필름축제, 23일 체코 스토나바 지역 축제를 거쳐 25일 프라하 드보르자크 홀에서 공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관악단을 이끌고 있는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49·왼쪽)를 최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다볕문화는 다볕청소년관악단 활동 지원을 위해 2008년 음악인, 연극인, 일선 교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전 대표는 1982년부터 함양교육청 관내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2007년 퇴직, 함양지역 연극단체인 ‘광대’의 일원으로 일하며 농촌 한글교육에도 매진했다.

“함양은 1960년대 초·중·고교 관악단이 10개가 넘을 정도로 음악이 발전했던 곳입니다. 산업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아직도 함양초와 위성초 두 곳은 관악단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법인을 만들면서까지 청소년관악단을 지원하는 이유를 물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이 음악을 계속하기 힘든 환경이에요. 중학생만 되면 입시에 내몰리면서 마땅한 취미생활이 없는 아이들이 비뚤어지기도 하고요. 한국판 ‘엘시스테마’라고나 할까요.” 엘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로, 음악 교육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운동을 말한다.

2005년 창단한 관악단이 이번에 유럽 공연 기회를 갖게 된 것은 2009년 제주국제관악제에 참가하면서다. 당시 제주에 왔던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필하모닉 관계자가 아이들을 눈여겨보고 초청 공연을 의뢰한 것.

전 대표의 초등학교 은사이자 현재 관악단장을 맡고 있는 오일창 전 함양교육장(66·오른쪽)은 “제가 보기에 전 대표 이 친구는 아이들 교육에 ‘미친 사람’이에요. 2009년 초 교육장 퇴직 후 쉬고 있는데 관악단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 공연을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해낼 줄은 몰랐죠. 하하.”

이번 유럽 공연에 들어가는 비용은 3억6000만원 정도. 경남도와 삼성, 한국마사회, 경남메세나협의회 등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후원 기업이 많지 않아 운영에 애로가 있다. 하지만 전 대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아이들이 보내오는 감사의 편지다. 그 편지에 힘을 얻어 부족한 운영자금은 법인 자체 영농사업 수익과 교사들의 십시일반으로 충당하고 있다.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전 대표. 얼핏 전형적인 시골 농부의 모습이지만 그의 꿈은 이미 세계 무대에 나가 있다. “오는 8월이면 염원하던 관악단 연습실을 겸한 다볕문화센터가 완공됩니다. 연말에는 현악기를 추가한 오케스트라도 창단할 예정이고요. 유럽 공연에선 대한민국 산골마을의 작은 소리가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릴 겁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음악인들을 지리산 자락으로 불러모아 그들의 소리를 들어봐야겠지요.”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