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관 봉직 중에 모교의 부름을 받아 총장 직무를 수행한 지 두 해를 맞았다. 오랜 세월 정부와 사법 등의 기관에 있다가 대학 수장으로 오니 적응이 수월하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다. 대학의 주체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다양한 개성으로 조직화돼 있다는 걸 실감한다. 법질서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게 교육질서라는 점, 그런 이유 때문에 인재상과 교육목표를 제시하면서 이해와 조정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체감하는 중이다. 재판관으로서의 판결은 헌법적 가치에 따른 명징성을 추구하지만 대학 경영도 이에 못지않게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을 새롭게 자각했다.

다양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직책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재판관이든 총장이든 사리 판단의 기준을 공동체정신에 맞추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공동체의 가치로 귀속되며 그 실행 역시 이 원칙을 따른다는 점은 확실하다. 공동체의 가치는 많은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허깨비이기 십상이다.

오늘의 대학들은 각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경쟁적으로 지표를 관리한다. 그 중에는 취업률도 중요하다. 취업에 관한 한 학생들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20여년을 공부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안정적인 일자리, 연봉이 높은 직종,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갈망하는 게 우리 학생들의 현주소다. 대학 교육 또한 이런 요구를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교육의 진정한 목표일까.

세계 최고의 대학 교수들을 만나보면 시원하고 간명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육을 왜 받는가 하고 물으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답하라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추상적인 대답이지만 공동체를 진보시키는 데 기여하라는 강력한 권유가 학생들의 뇌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건 사실이다.

경쟁력 평가가 능사는 아니다. 이제 우리 학생들에게 자수성가나 입신양명이 아닌 회두토면(灰頭土面·속인과 같이 어울려 고뇌를 나눈다)의 향하수행(向下修行)을 권하고 힘쓰게 할 필요가 있다. 자기성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공동체정신을 실현하는 종교적 수행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불교의 선승들은 이를 두고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라”고 한다.

진정으로 배우고 깨달은 사람은 자기만족에 머물지 않고 뭇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해 실천한다. 그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얼굴에 흙칠을 하면서 치둔인(癡鈍人)처럼 지낸다. 아프리카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다 작고한 이태석 신부 같은 분이 바로 이런 경우다. 종교적으로 보면 성인인데 교육적으로 보면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참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 교육은 이런 아름다운 사람을 기르는 일에 보다 헌신해야 한다.

김희옥 < 동국대 총장 khobud@dongguk.edu >